자율적·창의적 학습 분위기로 공교육 회복 가능
부정적 사례 일반화하기보다 감시·감독역할 강화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예전에는 학생들과 미술관으로 체험학습을 가면 30분이면 끝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해 오는데다, 진지하게 적고 기록하고 평가하느라 3시간도 모자랍니다. 보고 관찰하는 학생들 눈빛이 달라요."(송선용 인천 광성고 교사)
대학 입학전형의 대세가 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놓고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불만과 우려가 높아지자 일선 학교 현장에 재직중인 교사들이 반박하고 나섰다. 오히려 학종 도입 이후 학생들이 교과 수업시간에 암기 위주의 공부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에 참여하는 등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인창고등학교에서 한국진로진학정보원이 주관하는 '대입전형 이대로 좋은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교사들은 학종으로 학생과 교사들의 적극적·주도적인 자세가 늘고 있어 공교육 정상화는 물론 앞으로 학교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생 한명 한명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동아리 활동 등 비교과 영역까지 신경 써야 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과다한 업무가 부담이 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최고의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배상기 청원고 교사는 "학종 도입 이후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욱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수업시간에 발표와 질문을 활발하고 혼자보다 함께 해야 한다는 기류가 교실에 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학종이 완전한 제도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변화시킬 최선의 제도"라고 평가했다.
최영수 공주대부설고 교사는 "학종은 기존의 암기나 논술 등이 아닌 학생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평가하는 전형"이라며 "학생들이 학교생활이라는 삶의 과정을 평가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학교 교육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기능도 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최근 학종의 비교과 영역으로 '소논문' 작성이 중요해지고, 이를 도와주는 수백만원대 컨설팅까지 등장하면서 '부자들에게 유리한 입시'라는 오명을 쓰는 등 학종 자체를 반대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전 서울대 입학사정관)는 "어떤 학생의 학생부에 소논문을 썼다는 기록이 있어도 입학사정관은 이 학생이 시간을 들여 소논문을 썼구나 생각할 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논문이 어떤 수준인지, 누가 가필해 줬는지 알 수 없으니 당연히 평가할 게 없다"며 소논문 무용론을 펼쳤다.
임병욱 인창고 교감은 "학종에서 사교육의 힘을 빌릴 경우 금방 드러나고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며 "사정관 2단계, 3단계 면접이 그리 녹록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지 않은 큰 옷을 걸치고 있는 학생을 평가자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종이 100% 올바른 전형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평가의 공정성과 기준, 결과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이를 보완·발전시키면 충분히 훌륭한 한국적 입시제도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정제원 숭의여고 교사는 "이제는 일본식 학제나 미국식 입시제도, 핀란드식 교육 내용 등과 같이 국적을 알 수 없는 교육이 아닌 한국의 미래사회 인재상에 부합하는 입시제도가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한국적인 인재는 무엇이고, 한국적인 입시제도는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뤄 어떤 방법으로 인재를 키워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겸훈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한남대 입학사정관)은 "현재 대학이나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학종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며 "무늬만 학종으로 운영하는 대학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감독기관을 압박하고 학교교육이 사교육에 의해 황폐화되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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