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끝자락을 차지한 해남이라는 고장을 처음 밟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그때 남은 기억이라고는 불타오르는 듯한 황토와 대흥사라는 고찰이 전부. 한창 한옥 숙소에 빠져 전국을 누비던 어느 해, 우연히 해남의 한 곳에 홀리고 말았다. 두륜산 자락 아래 푸르게 익어가는 차밭과 객들에게 내어주는 한옥을 품은 향기 나는 싹의 동산이다.
새순 돋는 야생 녹차밭에서, '설아다원'
봄, 여름, 가을, 겨울. 남도에서 그곳의 소식이 문자로 날아온다. 녹차 잎을 땄다거나 야외 음악회가 열린다거나…. 매번 바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설아다원의 문자 편지는 반가운 남도 소식이다. 그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옥 스테이에 푹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처음 친구와 찾았을 때에는 한옥만 보였고, 가족 여행으로 두 번째 찾았을 때는 야생 차밭이 눈에 들어왔고, 일본 친구들과 세 번째 찾았을 때는 정이 많은 부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진 찍는 후배에게 자랑을 해가며 네 번째 찾았을 때는 이곳이 우프 호스트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설아다원은 사람을 좋아해서 민박을 운영하고 자연이 좋아서 풀꽃과 이야기하는 부부가 산다. 두륜산 남쪽 자락에 1만여 평의 야생 차밭이 있고 한옥 펜션과 흙집 등은 겸손하고 나직하게 자리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렀던 일본 친구는 당시 요양 중이었는데 안주인이 권하는 대로 야생 차밭이 보이는 나무 데크에 벌러덩 누워 있었던 수십 분의 시간을 한국에서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한옥에 머물면 저녁에 주인 내외가 정중히 내주는 유기농 차도 얻어 마실 수 있고 더 친해지면 남도민요 판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신나는 댄스 타임도 즐길 수 있다. 사람 좋아하는 부부의 건강과 동안 비결은 야생차를 마셔서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댄스 타임 후에 알게 됐다. 시골에서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마음과 생활, 야생차 그리고 흥이었다.
시골의 아침 산책도 정말 달콤하다. 숲 해설사인 주인아저씨가 안내하는 야생 차밭 산책은 잊고 살았던 이름들을 되뇌게 한다. 오이풀, 질경이, 괭이밥, 때죽나무…. 상쾌한 시골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욕심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마법의 땅, 자연은 그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자연과 사람이 키운 그윽한 맛, 설아다원의 '야생차'
설아다원의 차밭은 부부가 20년 가까이 공들여 가꾼 보물이다. 벼농사를 짓던 부부는 절기놀이 사랑모임을 통해 차와 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두륜산에 차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스님이 거처했던 일지암이 있으며 초의스님에 의해 해남이 차문화의 큰 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차농사에 뛰어들었다. 2002년부터 유기재배 인증을 받았다는 차밭은 텃밭 가꾸듯 쉽게 이룬 것이 아니었다. 잡목과 야초가 뒤엉켜 있었던 곳의 돌을 줍고 잡목을 제거하고 차 씨를 심어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찻잎을 틔웠다. 처음에는 3만 4천 그루의 차 묘목을 사와 심었지만 80% 이상이 고사되는 시련도 겪었다. 부부는 무등산 춘설헌, 강진 금곡사 뒤편, 해남 녹우당, 강진 봉황 골짜기 등지에서 차씨를 따 와 씨를 뿌렸다.
설아다원에서는 어린 찻잎을 한 잎 한 잎 손으로 따고 선별하여 솥에 덖고 비비고 말려 차를 만든다. 한 잔 마시고 나면 몸이 맑아지는 것 같은 우전사월차를 비롯하여 감나무잎차, 녹나무잎차, 쑥차, 목련차도 맛볼 수 있다. 봄이 되면 직접 찻잎을 따서 덖어 볼 수 있는 차 만들기 체험장도 운영한다. 또 차 체험과 차 명상, 제철음식 체험, 풍물 체험도 가능하며 한옥과 황토방에서 머물 수도 있다.
Infomation
해남군청 http://tour.haenam.go.kr
해남군관광안내소 061-532-1330
설아다원 전남 해남군 북일면 삼성길 153-21, 061-533-3083
글=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사진=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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