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낱말의 습격' - 이상하게 쓰이고 있는, 시댁 가족 호칭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시댁이 싫어서 시금치도 안먹는다는 말이 있다. 시(媤)는 독특한 말이다. 한자를 뜯어 읽으면, '여자의 생각'이며 조금 더 풀면 여자의 마음밭이다. 이 말은 동양의 부부살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여자가 자기의 본가를 두고 남편의 집에 들어와 사는 제도는 남성본위 사회의 핵심이 되었다. 조선의 경우, 시집에 들어온 여자는 이름도 없으며 오직 타고난 성만 가지는 존재가 된다.
개인은 없으며 어느 가문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만 강조되는 것이다. 부부관계 또한 가문의 일로 제어되고 관리되었다. 시댁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남편의 관계와 동등하되, 아내의 경우는 모두 철저한 을(乙)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에 와서 시댁은 '그들만의 세계'라는 의미로 '시월드'라는 조롱 섞인 호칭을 지니게 된다.
시(媤)는 지아비의 가문을 뜻하면서 '남편의'라는 의미도 겸한다. 시(媤)에는 남편이란 의미는 없지만, 남편과 동일시되는 아내의 처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마음밭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밭(田)은 출산의 개념을 담고 심(心)은 양육의 뉘앙스를 담아, 시댁에서 여자들이 해야할 일의 핵심을 숨겨놓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댁의 모든 관계들은 정확하게 남편의 관계를 따른다. 시모(시어머니)와 시부(시아버지)가 그렇고 시누이와 시동생이 그렇다. 그런데 시숙은 누구인가. 국어사전은 남편의 형을 시숙이라 풀어놓고 있다. 숙(叔)은 아재비라는 말이다. 시숙을 우리말로 풀어 시아주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남편의 숙(叔)은 삼촌이며 아버지의 형제이다. 시숙은 원래 남편의 삼촌을 가리켜야 하는 말인데, 남편의 형제를 가리키는 말로 오용되어 왔다. 그런데 시종숙은 남편의 종숙부, 즉 남편 아버지(시아버지)의 사촌형제들을 가리키는데 쓰인다. 관계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면 시숙을 시형(媤兄)이라고 하면 된다. 그래야 시동생하고 맥락도 맞다. 시숙은 시아버지의 형제, 즉 시삼촌에 쓰이는 것이 맞다. 시숙의 사촌은 시종숙(시당숙)이 되며 뒤에 '숙'이 붙은 분은 모두 아주버니(아재비)가 되는 게 자연스럽다. 결혼 이후 생겨나는 2차적 관계의 제1호 쯤 되는, 시형이 시숙으로 불리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충 호칭하며 살아온 까닭은, 시댁 그 전부를 '시월드'라고 부르는 그 넌더리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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