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굿 풍습 렌즈에 담은 故김수남 특별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무당의 딸이 시집을 간다면 부조를 하고, 시집가서 애를 나면 돌반지를 선물하고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죠. 문제는 이 사람을 굿하도록 부탁하는 일반인들이죠.…그래서 처음부터 굿을 시작할 때 카메라를 꺼내는 법이 없었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심방에게 들어와서 얘기들을 하거든요. 참 슬픈 사연이 많아요. 그런데 나는 원래 눈물이 많아서 그런지 그냥 사진 찍는 걸 잊어버리고 그냥 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면 '아 찍으라고 울지 말고 찍으라고' 저절로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 거죠. 그래서 그 눈물 덕을 좀 많이 봤어요"
전국의 굿판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찾아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고 김수남씨(1949~2006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무속은 여전히 민간 속에 그 생명력을 과시한다. 남에게 말 못할 속사정을 털어놓고, 가까운 인연이 세상을 떠날 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굿을 벌인다. 최근에는 굿을 전통예술의 한 갈래로 여겨 무대에서 소개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김수남이 1970년대부터 30여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들은 우리에게 잊힌 굿 풍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작가는 특유의 친화력, 넉살좋은 웃음과 공감어린 눈물로 낯선 이에게 배타적인 굿판 사람들과 동화돼 많은 사진 자료를 남겼다.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굿 현장에 대한 아쉬움으로 전통을 기록해야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했다. 굿판 사람들이 그에게 방울과 부채 대신 카메라를 든 무당이란 뜻으로 '사진 박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을 정도다.
작가의 유족은 김수남의 사진작품 총 17만여점을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서울 경복궁 안에 있는 이 박물관에서는 김수남 기증사진 특별전이 지난 6일 개막했다. 그의 대표작 100점이 모였다. 전시는 그가 무속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려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굿과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전통 굿과 상장례가 사진에 담겼다. 유사한 굿판 이미지들을 비교해 놓아 아시아 문화의 보편성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귀주성의 '희나신'이라는 굿판에서 무당이 작두를 타는 장면은 인천 동구 '소놀이굿'에서 작두그네를 타는 만신의 모습과 나란히 배치돼 있다. 그의 사진들은 내용 뿐 아니라 예술적 표현력도 뛰어나다. 사진에서는 굿 현장에서의 열기, 슬픔과 정화, 위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김수남은 1988년 무렵 아시아 곳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신문사 사진기자 일을 그만두고 일본, 중국, 인도, 미얀마, 네팔 등 11개국을 돌아다녔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오지를 누비며 그곳의 민속 굿 현장을 찾아 끈질기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는 태국 치앙라이에서 촬영 중 세상을 떠났다.
생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굿판에 들어가서 같이 사진 찍고 하다 보니까 거기서 참 대단한 것들을 발견했어요. 우리의 전통적인 춤도, 음악도, 놀이도, 또 신화마저도 거기에 섞여 들어있는 거죠."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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