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 사망 후 논란 재현...새로운 명소 자리잡았다 vs 여전히 골칫덩어리 주장 맞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역사성ㆍ장소성을 파괴한 도심의 괴물" vs "서울을 대표하는 명품 건축물".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별세한 세계적 여성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한국인들에게 남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명품인가 괴물인가? 그의 사망을 계기로 DDP를 둘러 싼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도로 건설된 DDP는 2014년 3월 개장 초기까지만 해도 '다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완공된 건물이니 제대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현실론'도 있다.
▲ "서울 관광 명소로 재탄생"
DDP를 옹호하는 쪽은 개장 후 다양한 행사ㆍ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DDP를 관리하는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DDP는 지난해 12월8일 기준 전체 방문객이 1388만595명에 달했다. 1일 평균 2만2103여명이 방문하고 있다.
DDP에 방문객이 늘어난 것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마치 우주선을 닮은 독특한 외관의 덕을 많이 봤다. 많은 사진가들과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몰려들었다. 사진 및 동영상을 통한 SNS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이 2015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명소로 선정할 정도였다. 페이스북도 지난해 12월 '2015년 올 한해 화제의 토픽들'을 발표하며 DDP를 국내 사용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5위로 꼽았다.
다양한 패션,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린 것도 한 몫 했다. '서울패션위크', '서울디자인위크', '간송문화전', '현대차 아슬란 론칭' 등 대형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방문객들이 늘어났다. TV 드라마, 영화 프로그램, CF 등의 촬영도 국내외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미국 드라마 '센스8', MBC 무한도전, SBS 별에서 온 그대 등 히트작들의 촬영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이로 인해 DDP는 중국ㆍ일본ㆍ동남아 등 한류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DDP가 2015년 대한민국 랜드마크로서 세계인에게 당당히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운영비 조달도 예상보다 순조로운 상태다. 애초엔 200억~300억원대의 운영비를 어떻게 조달할 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전시회ㆍ패션쇼 등 각종 행사의 대관료 수입이 늘면서 개장 첫해인 2014년 대관료 수입 223억원을 올리고 213억원을 지출해 1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오 전 시장도 최근 총선 출마를 위한 언론 인터뷰에서 DDP를 '업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동대문쪽으로 이동하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비롯해 동대문 근처가 대대적 새롭게 단장한 모습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변화들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시장 시절의 관심과 정책 구상이 시간이 흐르며 구체화되고 실현되고 벌어지는 변화"라고 자랑했다.
▲"여전히 골치덩어리"
반면 DDP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여전하다. 자하 하디드 본인이야 예술적 소신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을 남겼다지만, 실제 이 건물을 늘 보면서 이용해야 하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명품 건축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비판받는 것은 자하 하디드가 DDP를 설계하면서 동대문이라는 지역의 역사성, 장소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DDP가 들어선 곳은 1925년 건립돼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현대스포츠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동대문운동장을 허문 자리였다. 특히 건설 과정에서 청계천 물길이 성곽 밑을 관통해 흘러가도록 만든 이간수문(二間水門) 등 총 123m에 이르는 한양도성 성곽과 조선시대 최대 군영인 훈련도감의 부속기관인 하도감 터 유적들이 발굴됐다.
하지만 건물 설계 과정에서 이같은 역사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동대문운동장은 사정없이 파괴됐고, 이는 고척스카이돔 졸속 건설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간수문을 제외한 일부 유적은 여기저기 옮겨지고 터를 덮었을 뿐이다.
DDP 건설을 결정한 오 전 시장의 탓이 컸다. 그러나 국내 건축계에선 건물을 설계하면서 해당 장소의 역사성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자하 하디드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투명한 건립 목적 탓에 전시ㆍ행사를 통한 대관 수입료 외에는 별다른 자체 컨텐츠나 수익 구조가 없는 것도 여전한 문제다. DDP 건설을 결정한 오 전 시장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모델로 들면서 2011년 착공식에서 30년 동안 54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장담했다. 서울시도 DDP로 인해 생산유발효과 23조 원, 일자리 창출 20만 명, 외국인 관광객 280만 명을 유치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7년 개장 후 3년 동안 4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면서 건설비를 다 회수했다. 그러나 DDP의 경우 이대로라면 오 전 시장이 장담했던 경제효과는 커녕 건설비 회수도 힘든 상황이다.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는 "현재의 관람객 숫자는 실제 입장료 수익이나 주변 상권 활성화 등으로 연결되지 않는 등 허상에 불과하다"며 "국내 건축가들 중 어떤 분은 DDP를 돌아 본 후 화재가 날 경우 미로같이 복잡해 대형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개장 초기 DDP에 대해 지적했던 역사성ㆍ장소성의 무시한 설계, 건축가의 동대문에 대한 몰이해, 과도한 재정 낭비 및 수익 구조 불투명 등의 지적은 현재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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