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4억대로 스카우트되지만 계약직 신분에 고용불안
중국 항공시장 일시적 팽창기 "자국 조종사 수급 안정되면 인기 식을 것"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비행경력 20년차인 베테랑 기장 김모씨(51)씨는 최근 중국 대형항공사로 스카우트됐다. 3년 계약직이지만 1억원대의 연봉이 3억원대로 뛰었다. 게다가 입사 첫해 100% 보너스와 주거비도 지원받는다. 한국에서는 정년(60세)까지 9년 더 일할 수 있지만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 이직을 결심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계약기간이 끝나는 3년 뒤 계획은 차차 고민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연차의 이모(49) 기장도 최근 중국 항공사로부터 몸값을 2배 올려준다는 러브콜을 받았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연봉이 높은 것을 빼면 고용보장도 안 되고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대형 항공사에서 보잉 737기를 모는 선임 기장 이씨의 연간 근무시간은 약 700시간. 중국 항공사로 이직할 경우 이보다 43%나 많은 연간 1000시간을 일해야 한다. 사고 등으로 과실이 발생하면 퇴출당할 수 있다는 계약 조항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고액 연봉을 앞세운 중국 항공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국내 조종사들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요약하면 고액연봉이냐 고용보장이냐로 귀결된다. 사실 지금까지의 판세는 전자에 무게가 쏠렸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조종사들은 스스럼 없이 고액연봉을 택했다. 중국 항공사들이 국내 숙련된 기장들을 스카웃하기 위해 제시하는 연봉은 3억~4억원. 중국에서 중국인 기장들이 받고 있는 연봉의 3배에 달한다.
이 같은 구애에 중국행을 택하는 조종사들은 적지 않다. 지난해 대한항공에서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 기장은 46명. 대한항공 소속 전체 기장 1320명 가운데 3%에 이른다. 이들 46명의 평균 근속연수는 18년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기장급 베테랑 조종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대한항공에서 받은 연봉 평균은 1억7000만원으로 최소 2배 이상 많은 연봉을 받고 중국 항공기로 옮겨탄 것이다.
하지만 고액 연봉의 이면을 보면 상황은 복잡하다. 연봉이 국내 항공사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근무여건이나 복지혜택 등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중국 항공사들은 우리 조종사들을 3년~5년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국적 항공사들이 60살까지 안정적으로 정년을 보장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녀 학자금 지원도 차이가 크다. 국내 항공사는 고등학교ㆍ대학교 학자금 100%를 지급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중국 항공사들은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국내 항공사는 직계가족까지 쓸 수 있는 항공권을 연간 25~30매 제공하지만 중국 항공사들은 4~6매에 그친다. 이 뿐만 아니다. 국내 항공사는 임금 100%를 지급하며 2년의 휴가기간을 보장하는 '비행휴 제도'를 운영하지만 중국 항공사들 가운데 조종사의 안전과 건강관리를 위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중국의 러브콜은 '시한부 구애'일 공산이 크다. 중국은 신규 항공기 도입에 따라 매년 1200~1500명의 신규 조종사 인력이 필요하지만 해마다 양성되는 조종사 인력은 800명 수준이다. 400~700명의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베테랑 조종사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는데 중국인 조종사가 기장급에 이르는 3~4년 뒤에는 한국인 조종사들을 스카우트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항공사들이 200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기장을 대거 영입하고 있지만 자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수급이 균형을 찾게 되는 3~4년 뒤에는 수요가 끊길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액 연봉을 받고 중국 항공사로 이직하더라도 3년 또는 5년 후에는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경력 관리를 하는데 어려움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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