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비싼 메이커의 시대 '안녕'
가격 대비 성능비가 구매기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국내 유통업계의 키워드는 '가성비'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비'의 준말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뒤떨어지지 않는 제품을 말한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따지기 보다는 효율성을 높인 제품에 지갑을 열면서 시장의 핵심가치로 떠올랐다. 전반적인 소비둔화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합리적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마트나 편의점 등 유통채널이 선보이고 있는 자체브랜드(PB)는 가성비를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는 시장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의 PB상품은 1960년대 신세계백화점의 와이셔츠가 최초였고, 대형마트 중에서는 이마트가 1997년 PB우유를 도입하며 시작됐다. 그러나 '성능'보다는 '가격'에 초점을 맞춘 제품으로만 인식돼 존재감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대형마트 3사의 PB상품 매출 비중은 20~30%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가성비를 최대 가치로 내세운 이마트의 피코크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지난해 7월 선보인 노브랜드 제품 가운데 4개월만에 250만개 판매고를 올린 감자칩과 물티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초콜릿에 이어 2월에는 스파게티, 3월과 4월에는 각각 김치와 콜라, 탄산소다를 출시할 예정이다. 비식품부문에서도 3월에는 자동차용 4계절 워셔액, 4월에는 섬유유연제 등이 출시된다. 노브랜드 상품의 매출은 7월 20억원에서 올해 1월 78억원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의 경우 PB브랜드인 커클랜드의 매출 비중은 20% 수준인데 반면 커클랜드의 브랜드 가치는 전체 코스트코 가치의 80%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PB제품은 왜 가성비 제품으로 통할까? 이유는 반대 개념인 내셔널브랜드(NB)의 시장경쟁 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신라면이나 맥심커피 같은 NB 상품을 매장에서 판매하려면 가격싸움은 필연적이다. 인터넷을 통해 가격 비교가 단 몇 초면 가능해진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가격경쟁이 심화될수록 유통업체의 수익성은 낮아진다. 때문에 수익성도 확보하고 고객이 자사 매장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한 선택으로 PB상품이 등장하게 됐다. PB상품은 같은 상품이 타사 매장에는 없는데다가, 광고나 홍보 같은 마케팅 비용은 아낄 수 있어 NB 대비 가격이 20~30% 가량 저렴하다.
미국, 영국 등 유통 선진국의 경우는 PB상품의 매출이 업체에 따라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영국의 마크엔스팬서의 PB매출은 100%에 가깝고, 초저가형 디스카운트 스토어 콘셉트의 독일 알디는 90% 이상의 매출이 PB에서 발생한다. 국가별로는 한국이 현재까지는 5%,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44%, 28%에 달한다. 미국 역시 18% 수준이다.
국내 PB상품은 단순히 라벨만 바꾼 1세대, 기획에 관여하며 제품력을 확보한 2세대에서 최근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3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PB의 전략이 가격대에 따라 제품을 나누던 것에서 지금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온오프라인 유통채널 영역도 무너진 상황에서 제품 자체에 대한 차별화를 무기로 고객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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