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1928~1999)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 촬영 전 자료 조사부터 개봉까지 철저한 계획을 세운 다음 영화를 제작하기로 유명하다.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 큐브릭은 특수효과까지 그가 생각한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냈다. 현실적 감각을 갖춘 완벽주의자의 면모는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Spartacus)'를 찍을 당시 로마 노예 엑스트라 3600여명 모두에게 1번부터 번호를 매길 정도였다. 장면마다 서로 다른 동작을 취하도록 일일이 지시했다.
큐브릭은 사진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6살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죽음을 다룬 사진이 유명 잡지 '룩(LOOK)'에 팔리면서 이듬해 이 잡지의 견습 기자로 활동했다. 룩에서 가장 어린 사진기자였다. 25달러에 판매된 큐브릭의 사진은 신문 가판대 판매원이 루즈벨트의 죽음을 보도하는 신문 옆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는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사실은 스탠리 큐브릭이 부탁한 '설정샷'이었다.
사진작가를 그만두고 영화를 찍기 시작한 큐브릭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큐브릭은 돈벌이를 위해 체스 대회에 나갔다고 한다. 체스를 굉장히 잘 둬 상금을 작품 활동에 보태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큐브릭의 첫번째 영화는 '시합날(Day of The Fight)'인데 그의 필모그래피 시작은 '공포와 욕망(Fear And Desire)'부터다. 큐브릭은 감독 입문 초기 시합날을 포함한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3편을 제작했으며 이후 장편영화 13편을 만들었다.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는 남자 주인공 잭 니콜슨이 200번의 엔지(NG) 끝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낸 적이 있다. "다시!"를 외치는 큐브릭 감독이 당시 왜 다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샤이닝이 공포영화였기에 탈진할 정도로 지친 잭 니콜슨의 표정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장면을 위해 27일이 걸렸던 적도 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인데 한 번 엔지가 나면 방을 치우는데 9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톰 크루즈와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에 출연했던 니콜 키드먼은 "매번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실신 직전까지 간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이 소재인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은 영국에서 찍었다고 믿기 힘들만큼 베트남스럽다. 완벽주의자였던 큐브릭은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스페인에서 야자수를 수입하기도 했다. 일부러 흐린 날씨가 되기만을 기다려 동남아시아 기후를 표현했다. 시간을 끌면 엄청난 제작비가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영화 촬영 도중 한 배우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다른 배우로 바꾸지 않았다.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4개월을 기다렸다 영화를 다시 촬영했다. 큐브릭은 배우들의 옷부터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까지 직접 만들거나 주문했다. '2011 스페이스 오디세이(2011: A Space Odyssey)' 촬영을 위해 파커, 해밀턴, 니콘 등 40여개의 브랜드로부터 협찬을 받았다.
큐브릭의 세번째 아내로 영원한 동반자가 된 크리스티앙 큐브릭(Christiane Kubirck)은 그의 영화 '영광의 길(Paths of Glory)'에 출연한 배우였다. 영광의 길은 독일 아가씨가 포로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이 때 노래를 부르는 배우가 크리스티앙이다. 크리스티앙 큐브릭은 현재 화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장의 삶은 일흔의 나이로 영국 런던 자택에서 막을 내린다. 1999년 아이즈 와이드 샷의 개봉 직전이었다.
영화 'A.I.'는 큐브릭이 제작하기로 계획했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완성한 영화다. 영화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큐브릭은 생전에도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할 정도로 신뢰했다고 한다. 큐브릭이 남긴 미완의 시나리오 '나폴레옹'을 스필버그 감독이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만든다고 하니 큐브릭은 죽었어도 완벽하게 죽은 것은 아니다. 영화계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감을 주고 있다.
* 스탠리 큐브릭전(展) = 현대카드사가 컬쳐프로젝트의 하나로 작년 11월29일부터 서울 시립미술관서 장기전시하고 있는 영화거장의 50여년 작품활동 회고전이다. 20세기 미국 출신 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을 왜 한국에서 이토록 대대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일까. 혁신적 영상기법과 치밀한 디테일로 영화사를 새로 쓴 그의 창조적 고뇌를 들여다봄으로써 21세기의 상상력을 일깨우자는 게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한다. 이 전시에는 그의 다채로운 작품활동이 총 망라되어 소개되고 있고, 의상과 소품, 그리고 미공개 영상과 미완성 유작까지 보여준다. 아시아 최초로, 역대 최대규모인 1000여점 작품들이 모였다. 아시아경제 디지털룸 기자들이 꼼꼼히 들여다보며 그 현장의 '공기'를 소개한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계속된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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