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유난히 얼굴 피부가 두꺼운 후임이 있었다. 두껍기도 하고 아주 빳빳해서 '빳빳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행동도 얼굴만큼이나 유별났다. 실수가 잦았고 때로는 거짓말도 했다.
한 번은 겨울 저녁에 매점 심부름을 보냈더니 잠시 뒤 돌아와서는 문을 닫았더라고 했다. 그 곳에선 절실했던 주전부리의 즐거움을 접어야 했다. 그런가 했는데 옆 소대 졸병이 박스에 과자와 만두 등을 잔뜩 담은 채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대 파티라도 했었나보다.
적어도 내무실에선 스스로 장성급으로 착각하고 사는 병장 때였다. 얼굴 두꺼운 후임을 찾아 불같은 추궁을 해댔음은 당연지사다.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추워서, 가다가 그냥 돌아왔다'는. 아무리 관대하려 해도 명령 불복종과 선임 능멸의 죄과에서 한 점도 덜어낼 수 없었다. 엄히 다스렸다.
비슷한 류의 일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밝았고 속내야 어떤지 몰라도 자고 나면 어제 일들은 잊은 듯 했다. 그리고 졸병 생활 중에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이 숨겨지지 않던 후임이었다. 혼내면서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짬밥'이 더 쌓이고 나의 제대가 가까웠을 무렵이다. 그가 졸병들을 모아놓고 군기 잡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는 내가 보고 있는 줄 몰랐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의 목소리. "야, 이 XX들아, 나 졸병 때는 진짜 안 그랬다. 아우, 똑바로들 좀 하자!" 그 때부터 얼굴 피부와 성격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제대하고 만난 그는 물론 더욱 밝아져 있었고 나는 취기를 빌려, 비겁하지만 '진심으로' "그 때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오히려 나를 달랬다.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라고. 나는 그를 얼굴 두껍고 순수한,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낯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용산 참사 과잉 진압의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 축소 의혹을 받았으며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던 사람, 공중파 PD에게 "네가 뭔데"라고 외치며 '스폰서 검사'로 불렸던 사람, 그리고 아나운서 비하와 불륜 의혹 등으로 점철된 사람 등등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로 깨끗하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초유의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TV를 통해 검사의 낯 뜨거운 속살이 드러났고, 방송인으로 변신했던 정치인의 불륜 공방 역시 중계되다시피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적어도 대명천지에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고 나서기에는, 부끄럽지 않은가. 이 차원이 다른 낯 두꺼움에 황망스럽기만 하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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