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앞으로 업무성과가 낮은 근로자에 대해 재교육, 전환배치 등을 실시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통상해고(일반해고)가 가능하다. 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할 때 노조나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다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의 일반해고 요건·취업규칙 변경 등 양대지침의 최종안을 공개하고 오는 25일부터 전국 사업장에서 적용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양대지침 강행에 반발하며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지 불과 3일만이다.
양대지침은 저성과자 해고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반해고 요건 지침, 근로자(또는 노동조합) 과반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을 가리킨다. 4대 입법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고용부는 이날 양대지침 최종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오는 25일 전국 47개 기관장 회의를 개최, 지침을 시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기업들은 현장에서 양대지침을 바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고용부는 빠른 시일 내 양대지침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지침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 관련 법률과 그간의 판례에서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요건과 절차를 충실히 반영했다"며 "전문가 간담회, 현장 노사의 의견을 반영해 노동계가 주장하는 '쉬운 해고'는 절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양대지침 최종안은 지난해 말 발표한 초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롭게 제정되는 일반해고 요건 지침에 따르면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성과가 낮은 근로자에 대해 회사측이 재교육, 전환배치 등을 실시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일반해고 사유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는 '쉬운 해고'로 악용되지 않도록, 근무평점이 낮다고 바로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없게끔 기준을 강화했다. 출산·육아휴가, 업무상 부상·질병으로 인한 휴가에서 복귀한 지 30일이 되지 않은 경우에는 해고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평과 과정에서 계량평가와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한 객관적 절차를 전제했다. 사측은 재교육, 배치전환 등 개선의 기회를 의무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한 취업규칙 지침은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의 효력을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 기준으로 ▲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적당성 ▲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6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의 경우 불이익 변경인 만큼 근로자 동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경우 동의 없이 '충분한 협의'만으로도 도입이 가능해진다.
최종안 발표 과정에서 새롭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분야는 법원에서 인정 또는 기각된 양측의 사례를 균형 있게 담은 점 등이다.
정부가 대타협 파기 3일만에 곧 바로 양대지침을 발표한 것은 이미 정년 60세 제도 등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내 지침을 확정해 현장의 혼선과 불확실성을 줄여야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장관은 "노사협의와 관련해 지난해 12월부터 끊임없이 공식, 비공식 협의를 요청했으나 한국노총이 협의 자체를 계속 거부해 더 이상 협의가 불가능했다"며 "빠른 시일내 지침시행과 함께 노사가 알 수 있게끔 충분한 홍보활동을 해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오늘 지침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직급, 업종별로 다양한 노사 관계자들을 만나 진솔하게 얘기했다"며 "취지와 배경, 기준, 절차 등을 설명했더니 그렇다면 충분히 노사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고 돌려 답했다.
향후 노정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정부의 일방적인 양대지침 강행을 대타협 파기의 원인으로 지목한 만큼, 독자적 추진이 빚어올 후폭풍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이 장관은 노정갈등 우려에 대해 "그간 지침이 확정이 안됐을 때 '쉬운 해고' 등 논란이 있었으나, 오늘 지침을 확정해서 발표하고 현장 노사가 엄격히 이를 따라오면 오히려 갈등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며 "행정소송 등 노사다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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