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에서 관계맺기 수단
의도된 가짜 댓글이 진짜를 가려버리면 여론도 달라져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인터넷 상에 "악플(악성 댓글)보다 무서운 건 무플(댓글이 없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올렸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보다는 누군가 욕하는 댓글이라도 달아주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왜 그렇게 댓글을 중요하게 여길까?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온라인에서도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의 생각에 다른 이들이 동조하는지, 특정 사안에 대해 남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한다.
댓글 수가 많을수록 더욱 인기 있는 글이 되고, 더 많은 네티즌이 글을 읽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첫번째로 올라온 댓글이 어떤 뉘앙스였느냐에 따라 이어지는 댓글들도 영향을 받는다. 가장 처음에 달린 댓글이 긍정적이면 긍정 댓글이, 부정적이면 부정 댓글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원래 올린 글보다 댓글이 더 재미 있거나 재치가 넘쳐 네티즌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원래의 글과 합쳐진 댓글, 또는 영향력이 커진 댓글이 한데 뭉치면 처음과는 다른 더 거대한 얘깃거리가 된다. 이것이 정책이나 사회문제에 적용돼 정치적 색깔을 갖게 될 때 흔히 '인터넷 여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의도된 댓글이 여러 개 달릴수록, 그리고 빈번히 드러날수록 이같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네티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니터에 활자화된 그 내용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댓글이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꾸준히 댓글 조작을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제기하고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한 '가짜 댓글'이 등장하면서 특정 집단의 생각이 '대중의 생각'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댓글에 의한 여론 조작은 중요한 정책 변화가 있을 때, 또는 선거철을 앞두고 더욱 횡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사이 '댓글도 조작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네티즌들이 예전처럼 액면 그대로 댓글을 받아들이지는 않기 때문에 댓글 조작으로 거대한 여론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댓글을 누군가 나서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설사 관리하더라도 별다른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댓글 조작이 어떤 인과 관계를 거쳐 결과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증명해 내기 또한 쉽지 않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댓글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쓰게 되는데, 다른 누군가가 의도된 댓글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면 개인의 의견은 묻혀버려 여론으로서의 성격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댓글을 받아들이는(읽는) 사람 입장에서 댓글을 얼마나 신뢰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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