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한국노총은 9·15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고, 합의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도 불참하겠다고 19일 선언했다. 17년만의 노사정 대타협이 파국으로 치달으며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도 좌초위기에 처했다. '쉬운 해고' 논란이 일었던 양대지침은 정부 독자적으로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9·15노사정 합의가 정부, 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조각이 됐고, 완전 파기돼 무효가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협상기조에서 벗어나 정부와 여당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정책에 맞선 전면적인 투쟁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며 "더 이상 합의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노총은 지난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양대지침 백지화 등 정부의 성의있는 변화가 없으면 이날 투쟁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선 노사정이 만나서 협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일반해고 지침은 판례를 기반으로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채용ㆍ인사ㆍ해고 등에 있어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이다. 노동개혁 4대입법과 달리 정부 지침만으로 현장에서 시행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노사정은 추후 독자행보를 걸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양대지침을 강행하고,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함께 대정부 투쟁에 나설 전망이다.
앞서 이 장관은 노동계와의 협의가 양대지침 강행의 필수요건인지를 묻는 질문에 침묵을 지키다 "협의를 하기로 했으니 해야 하지 않겠냐"고 짧게 답했다. 독자적 강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 경우 노정갈등은 사상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날 김 위원장은 양대지침과 관련해 "평균 근속년수 5년, 정년까지 가는 노동자 비율이 10%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만으로도 노동자들은 상시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야지 정부가 하듯이 시간에 쫓겨 다룰 성질이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선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정부의 지침이 위법 부당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는 만큼, 통상임금의 예에서처럼 정부의 지침은 현장의 노사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가처분 소송, 위헌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비롯해 산하조직에 대응지침을 시달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과 관련해서도 투쟁계획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4.13총선에 대비해 총선공약을 마련하고, 박빙이 예상되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노동자 후보와 정당에 대해서는 조직적인 심판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탈퇴가 아닌 불참을 선언한 것은 향후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타협 파기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히고 있다.
이번 대타협이 22%에 육박하는 청년 체감실업률을 낮추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점을 감안할 때, 협의테이블을 박차고 나선 노동계는 물론, 일방적으로 양대지침을 강행한 정부, 경영계, 중재역할을 못한 노사정위원회까지 책임론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계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그동안 합의 정신을 훼손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양대)지침은 노동계에 핵심적인 사안도 아니고, 근로자에 치명적인 사항도 아니다"라며 "대타협의 일부분이고 지엽임에도, 제대로 협의를 시작하지 않고 대타협 전체를 흔드는 지금의 노조와 정부 행태는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대표인 이 장관은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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