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카드 수수료 내린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만 인상한다고 하니 배신감을 느낀다. 카드사들도 돌려막기 하는 것이냐.”(일부 가맹점주)
“지난해 수수료율 인하 결정으로 7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영세 사업자를 제외한 일부에 대해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원가를 반영하려는 것 뿐이다.”(카드업계)
연초부터 불거진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논란이 인상 최소화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0.7%포인트 낮추고, 매출 3억~10억원인 가맹점의 경우 평균 0.3%포인트 인하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체 가맹점의 6%가량은 매출액 증가로 영세·중소 가맹점 범위를 벗어나서, 4%가량은 밴(VAN) 수수료와 무이자할부 등 마케팅 비용 증가분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카드사들이 이달 말 수수료율 인상을 통보한 것이다.
주된 인상 대상이 된 업종 단체들인 의사회, 약사회, 외식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주유소협회 등이 강하게 반발했고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나서 대책 마련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가맹점 입장에서는 수수료율이 내리는 줄 알았는데 오르니까 크게 부담이 된다고 하고, 정부 정책은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하는 아니어도 인상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금융당국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금융당국은 평균 개념으로 인하 방침을 밝힌 것이므로 일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었으나 검토해보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면서 “시장의 요구가 무리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잘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매출이 늘어 영세·중소 가맹점 기준을 넘어선 6%의 가맹점에 대해서는 수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며, 원가 인상분이 반영된 4% 가맹점에 한해 기존 수수료율을 유지하자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수수료율 인상 통보를 받은 가맹점은 25만개가량이며 이 중 원가 인상이 이유인 곳은 10만개가량이다.
현행 카드 수수료 산정 원칙은 원가를 기반으로 하되 영세·중소가맹점에 한해 감독규정에 위임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수수료율 인상은 카드사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며 금융당국이 강제로 조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나서면서 금융당국도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어져 카드업계에 우려를 전달하는 조치를 취했다.
지금으로서는 카드사들이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공적 성격이 강한 은행권 계열 카드사들 입장에서는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나서고 금융당국까지 신경을 쓰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버티기 힘들다”면서 “어느 한 곳이라도 인상을 철회하면 다른 카드사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동안 수수료율이 지속적으로 인하돼 왔는데 이번에는 원칙마저 흔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대수수료율은 4.5%에서 2012년 말 1.5%로 인하됐고 적용 대상은 연 매출 4800만원 미만에서 지난해 1월 3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됐다. 지난해 다시 금융당국이 우대수수료율을 낮추자 업계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앞서 2012년 말에는 업종별 수수료 체계를 3년 주기로 한 적정 원가 기반으로 변경했다. 이후 3년이 지나 이번에 카드사들이 원가를 반영하려는데 제동이 걸린 셈이다.
카드업계는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권이 강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도 일부 수수료율 인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표가 걸려있기 때문에 압력을 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칙의 훼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당국에서 금리와 수수료는 자율화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다시 옥죈다면 신뢰의 문제가 생긴다"면서 "선거가 있다고 해서 원칙이 왔다갔다하면 한국 금융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 수수료율이 많이 인하됐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장사를 할 수있게 해줘야 서비스 개발도 하고 혁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