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끝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후반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입에 문채 양손에 장총을 들고 수십 명을 해치우는 '영웅본색'류의 총질 액션과 '지존무상', '도신' 등의 도박 영화가 한달이 멀다 하고 개봉됐다. 당시 홍콩 영화는 스무살 안팎의 사내들에게 로망이었다. 총질은 해댈 수 없었으니 류덕화, 주성치 등이 열연한 도박 영화 흉내를 내 하숙집에서 친구들과 밤새 포커 판을 벌이기도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지난 주말 그때 멤버 중 한 명이 집들이를 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포커 판을 벌였다. 모처럼 하는 게임이라 그런지 순서도 헷갈리고, 긴장감도 예전만 못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있었다. 자기 패와 상대방 패를 보고, 베팅할 때와 접을 때를 냉정히 계산하던 친구가 20여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도 '위너'였다. 좋은 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무리한 베팅을 하는 친구들은 결국 돈을 잃었다. 자기 패만 보고 상대방 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하수 친구들보다 오히려 손실 폭이 더 컸다.
친구 집들이를 가기 전날 오후는 항의전화 수십 통에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날이었다. 글로벌 제약사에 공급계약을 체결한다는 소문에 대해 한 유명 바이오기업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기사에 대한 항의 전화였다. 이 기사에 잘 나가던 주가가 급락세로 반전하면서 순식간에 시가총액 3000억원 정도가 증발했다.
한미약품의 수조원대 기술수출이라는 '잭팟' 이후 바이오기업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지난주 시장과 신문사를 시끄럽게 했던 바이오기업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이 37억여원에 순손실 17억원에 머물고 있지만 시총은 2조원을 넘는다. 최근 개발중인 신약에 대한 기대감에 투자자들이 몰린 덕이다.
도박에 비유하자면 이미 '메이드'된 패가 아니라 마지막 기다리는 패가 들어와야 높은 족보가 완성되는 패인 셈인데 이미 판돈은 너무 많이 들어간 상태다. 이런 투자는 도박과 비슷하다. 기다리던 패가 나오지 않으면 순식간에 판돈을 날릴 수 있다.
상대방 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친구는 크게 잃는 경우가 드물었다. 좋은 패를 들었을 때만 따라가는데다 베팅도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박을 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내가 가진 패(종목)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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