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심 등 주요 라면업체들에게 '담합'을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담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상훈)는 농심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판매 업체들은 2001년 5월부터 2010년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라면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했다.
라면 업체들은 2001년 3월 '라면거래질서 정상회협의회'를 열고 가격인상률을 협의한 뒤 같은 해 5∼7월 주력품목 출고가를 322원으로 똑같이 맞췄다.
공정위는 라면시장의 70%를 점유한 농심이 가장 먼저 가격인상안을 마련해 알려주고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라면업체들은 판매실적 등 경영정보를 주고받으며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대표제품의 가격을 같은 인상률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담합행위를 적발해 2012년 7월 농심에 1080억원, 오뚜기에 98억원, 한국야쿠르트에 62억원 등 1362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담합·정보교환 금지명령을 내렸다. 삼양식품은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를 통해 과징금 120억원을 면제받았다.
서울고법 행정2부는 2013년 11월 농심 등의 담합 사실을 인정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히 시장점유율이 높은 주력품목의 출고가는 2001년부터 이 사건 처분 전인 2008년까지 대부분 원 단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시장점유율이 월등히 높은 원고의 선도적인 가격인상을 다른 사업자들이 추종하여 가격이 일치하였을 뿐 가격정보교환과 가격 일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가격정보교환을 통해 원고 등이 다른 회사의 가격인상내역을 자신의 가격인상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기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대법원은 담합의 근거가 된 제보와 관련해 의문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담합을 둘러싼) 증거인 진술은 모두 전문진술로서 대표자회의의 정황과 논의된 내용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당시 라면가격을 장기간 올리지 못하던 상황에서 원고가 먼저 가격인상을 주도해 줬으면 하는 점에 공감하는 분위기 정도만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각 업체별 라면 가격의 평균 이상율 편차도 있을 뿐 아니라 2001년에는 라면가격이 인상돼야 한다는 점 이외에 구체적인 합의 내용도 특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각 업체별 가격의 평균인상율도 다소간 차이가 있고 개별 상품의 가격인상폭도 다양해 '외형상 일치'가 인정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면서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원고로서는 가격인상에 성공한 2001년 이후에는 경쟁사업자들과 별도로 추종에 관한 합의를 할 필요성이 적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상 정보 교환 합의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의율할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정보 교환행위 자체를 곧바로 가격을 결정·유지하는 행위에 관한 합의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가 공정위 과징금 부과와 관련해 제기한 2개의 소송은 각각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대법원이 공정위의 '라면값 담합' 판단 자체에 의문을 품으면서 다른 라면업체의 상고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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