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 주연 최민식 인터뷰
"허공에 하는 연기 어려웠지만 시간 지나니 인사나눌 정도"
아버지 情 보여주고 싶어...분량 적어도 연기 좋으면 OK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최민식(53)이 아니었다면 '대호'를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박훈정(41) 감독의 고백이다. '대호'는 그가 배고팠던 시절에 쓴 시나리오다. 6년 동안 충무로를 돌고 돌아 다시 그의 손에 들어왔다. 예산도 문제였지만 호랑이에 맞서는 명포수 천만덕 역을 맡을 배우를 찾지 못했다. 지리산의 산군으로 등장하는 조선호랑이는 몸집이 가장 큰 시베리아 종에서도 큰 축에 속한다. 영화에서는 길이 3.8mㆍ무게 400㎏로 그려진다. 사료에 따르면 자존심이 세고 영리하다. 가죽이 두꺼워 총알이 여러 개 박혀도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조선 포수들은 거리가 18m로 좁혀질 때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해야만 사냥할 수 있었다. 박 감독은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배우가 기 싸움에서 밀리면 전체 균형이 깨져버리는 영화다. 대등하게 맞설 배우가 필요했고, 최민식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최민식은 상남자의 기운을 가진 배우다.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증명했다. '넘버3(1997)'ㆍ'쉬리(1998)'ㆍ'취화선(2002)'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더니 '올드보이(2003)'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주먹이 운다(2005)'에서는 링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고, '친절한 금자씨(2005)'ㆍ'악마를 보았다(2010)'ㆍ'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ㆍ'신세계(2012)' 등에서는 사악함과 잔인함의 끝을 보여줬다. 그런데 천만덕은 이런 캐릭터들과 거리가 있다. 지난해 '명량(2014)'에서 연기한 이순신을 닮았다. 울돌목을 지키는 장수처럼 지리산을 수호하며 동료 포수들에게 자연에 대한 예를 강조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최민식을 만났다. 그는 연기 27년차 베테랑답지 않게 "힘들었다"는 푸념부터 꺼냈다. "포수는 살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산군님들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라는 대사가 처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저지른 행위에 대한 업보를 치른다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되더라. 짐승과 교감할 수 있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민식은 누더기를 걸치고 눈밭을 수없이 굴렀다. 평소 천식을 앓아 찬 공기를 마실 때마다 기침을 했지만 설산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생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그런 건 힘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촬영장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 건 기본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캐릭터를 얼마나 입체감 있게 표현할 지에 대한 고민이라면 몰라도."
가장 어려운 작업은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신이었다. 호랑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한 영화라 허공을 보거나 호랑이의 움직임을 연기한 대역 배우를 상대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처음 겪는 현장이었지만 최민식은 "생각하지 못한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눈앞에 펼쳐질 호랑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새롭더라. '오케이' 사인이 나오면 호랑이가 지나갔을 방향으로 '수고했다'고 인사했다. 고생이 많았을 텐데 술 한 잔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 보답은 푸른색 특수복장을 착용하고 호랑이의 시선을 잡아준 곽진석(34)에게 돌아갈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어흥'하면서 실감나게 연기를 해주더라. 서울액션스쿨 출신 스턴트맨답게 날렵하고 빠른 몸놀림까지 보여줘서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
천만덕은 일본군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다. 절제를 잃지 않으면서 늘그막에 자식 하나만 보고 사는 촌부로 나온다. 최민식은 "우리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속정은 깊은데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무리 흔해졌다지만 아버지들에게는 예외인 것 같다. 그런 모습에 생활형 포수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배리라고 생각했다. 삶의 체험으로 자연의 순리를 깨닫는 사람 말이다." 배역의 갈등 요소가 적다 보니 그의 분량은 원 톱 영화치고 적은 편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한 신이면 어떻고, 두 신이면 어떻겠나. 중요한 건 내 연기의 개연성이다. 드라마에 적합하면 그만이다. 그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각자의 생각과 감성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만든 작품을 최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상처를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어깨는 많이 무거워졌다. '명량'이 역대 최다 관객(1761만5039명)을 동원하면서 이름 앞에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대호'가 북미에 선판매된 것도 그의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이 한 몫 했다. 하지만 최민식은 "연기는 어디까지나 자신만을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 행위를 통해서 많은 걸 느끼고 있다. '대호'를 통해서 생각하고 있는 주제의식을 대중과 함께 느끼고 싶은 거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