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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민주화ㆍ개혁의 상징으로 남은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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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어제 88세로 서거했다.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巨木)의 영면을 애도한다. 그는 일생을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으며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하나회 청산과 같은 개혁조치로 새로운 시대를 연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왔다는 멍에를 짊어진 채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 그는 영면했다. 대립의 정치와 고통의 경제가 지배하는 현 시점에서 정치권과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영광과 그늘을 깊이 되살려 봐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만 세 차례 역임하며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다. 그는 유신 독재에 맞서다 의원직에서 제명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로 민주화 열망을 표현했다. 신군부시절인 1983년 5ㆍ18 민주화운동 4주년을 맞아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고 그것이 1987년 6ㆍ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마침내 문민정부를 열어 30년 독재의 종지부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 쪽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투명화를 위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했고 공직자윤리법을 고쳐 고위 공직자 재산을 공개하게 했다. 강도 높은 '재벌 개혁'도 추진했다. 1994년에는 정보통신부를 출범시켜 정보기술(IT) 강국의 기초를 다졌고 1996년에는 중소기업청을 신설, 중소ㆍ벤처기업 육성에도 앞장섰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고 수출이 1000억달러를 달성하자 1996년 말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하지만 '선진국 한국'의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대가는 컸다. 1997년 한보그룹, 기아자동차 등이 부도나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낮췄으나 정부는 "펀더멘털이 좋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급기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었고, 경제와 민생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1997년 외환위기는 많은 교훈을 남겼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컸지만 빚으로 부실 경영을 한 재벌,구조조정을 막은 노조와 야당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정치는 리더십을 잃고 경제는 흔들린다. 저성장이 굳어지는 추세 속에 기업경쟁력은 급락하고 가계부채는 쌓이고 있다.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모두가 스스로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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