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금융' 시장 확대論, 산업사회 옛관점 바꿀까
금융권 안팎 성공적 정착 위해 법개정 외치지만 국회 심의 진통 불가피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의 운명을 가르는 은행법 개정안 논의가 18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시작됐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은산 분리 완화를 핵심으로 한 은행법 개정을 통해 ICT(정보통신기술) 기업 같은 창의적인 잠재 사업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의 은행 장악을 우려하는 여론이 만만찮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격론이 불가피하다.
◆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 최대 쟁점= 야당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완화하더라도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 여력이 있는 상당수 ICT 기업들이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게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다. 현재 3개 컨소시엄에 SK(SK텔레콤)와 포스코(포스코ICT), GS(GS홈쇼핑, GS리테일), 한화(한화생명) 등이 참여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무가 시중은행과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대기업 참여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은산분리 완화의 반대 근거 중 하나다. 동양그룹 사태 때 동양증권이 동양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불완전 판매해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도 대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 참여가 가능한데 은산분리를 완화하면 대기업의 참여는 더 확대될 수 밖에 없다"며 "은산분리 완화는 있을 수 없는 일로, 현행법 내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이 추진되는 게 맞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대해 기존 4%룰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우려가 없다"고 반박한다. 이날 법안소위에 올라온 신동우 의원안에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대기업) 집단은 예외로 두고 있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과장은 "개정안도 기존처럼 대기업 집단의 지분 참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은산분리 완화에 따른 사금고화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은행과는 유전자가 다른 집단이 들어와야 혁신적 사업이 가능한 만큼 개정안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산분리 필요하지만 국회 심의 진통 불가피= 금융권 안팎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고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발하려면 ICT 기업 같은 산업자본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시각에서다. 일본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앞두고 5%로 지분제한을 뒀던 은산분리 방침을 완화했다.
1950년 제정돼 1954년 시행된 은행법에는 은산분리나 동일인 주식 보유 한도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정부가 은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일인에 대한 주식보유한도가 법에 등장한 것은 1982년 은행법 개정때다. 당시 시중은행 민영화로 우려되는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8%로 동일인 지분한도 규제를 정했다. 동일인이란 같은 1인으로 보는 범위를 정한 개념으로, 주식을 보유하려는 본인과 그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한다. 이어 1994년에는 동일인 지분한도가 4%로 축소됐고 2002년부터는 동일인 지분한도(10%)와 비금융주력자 지분한도(4%)가 함께 적용됐다. 현행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는 전체 회사의 비금융회사 자본비중이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합계가 2조원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2009년 개정 때는 비금융주력자 지분한도가 4%에서 9%로 완화됐다가 4년 후인 2013년(현행법)에 다시 4%로 축소됐다.
금융업계 고위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에 대한 지분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은행법의 근간을 이뤄온 은산분리 원칙을 손대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은산분리 완화를 적용하기 힘들다면 미국처럼 저축은행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도 은행지주회사법에는 산업자본이 직간접적으로 25%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인터넷전문은행은 규제가 거의 없는 저축은행으로 인가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저축은행도 은행과 달리 대기업의 지분 보유 제한이 없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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