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선ㆍ건설 분야 저가 수주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어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기관 간담회를 열고 건설사와 조선사가 해외에서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의 사전 수익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한편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기관들은 전담조직을 가동해 수익성 평가를 철저히 하고 정보도 공유하기로 했다.
저가 수주로 기업이 흔들리고 돈을 빌려준 정책금융기관의 건전성이 나빠지자 나온 대책이다. 해당기업의 부실화가 깊어진 상황에서 나온 뒤늦은 선택이지만 정책금융기관들의 평가의 전문성, 중복 심사 등의 문제점이 제기된다. 해당 금융기관들은 면밀한 준비작업을 통해 기업에도 도움을 주고 정책자금의 효율성도 높이는 선순환을 일궈낼 책임이 있다.
이번 대책은 한때 캐시카우로 평가받던 조선ㆍ건설 분야 부실수주 관행, 정책금융기관의 책임방기를 인정한 '자백'과도 같다. 조선업계는 원가와 기술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제 살 깎아먹기식 수주전을 벌였다. 계약금 10%만 받고 선박과 설비 건조에 들어가 대금의 90%를 인도할 때 받는 리스크도 감수했다. 그러나 불황으로 발주업체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기술 부족으로 인도가 지연되자 손실이 쌓였다. 대우, 현대, 삼성 등 조선 3사가 거액의 동반적자를 기록한 것도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건설업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ㆍ건설업계의 부실화에는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의 책임 또한 크다. 국민 세금과 다름없는 정책자금을 빌려준다면 철저히 심사하는 것은 의무다. 그런데 정책금융기관들은 조선ㆍ건설사의 '몸집 불리기'에 경쟁하듯 보증과 대출 혜택을 퍼주고 수수료를 챙겼다. 최 부총리도 뒤늦게 "해외건설과 조선업계가 부실화하는 과정에 정책금융기관의 책임도 있다"며 공생관계를 자복했다.
문제는 대책의 실효성이다. 기업이 망할 단계에서 나온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복잡한 수주 내용과 사업성을 국책금융기관들이 제대로 심사할 능력이 있는지도 미지수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중복해서 평가할 경우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리스크 회피와 수익성만 앞세우면 기업의 수주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등 후발업체에 시장을 내주어 해외 수주가 급감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이 저가수주인지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기준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부실 수주를 막되 교각살우(矯角殺牛)를 피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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