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랑의 결실인 '생명의 빛'은 축복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 작은 생명과의 만남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40주, 엄마의 뱃속에서 머무는 시간이다. 짧지 않은 시간, 작은 생명은 보호가 필요하다.
때로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생명의 빛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유산(流産)의 아픔이다. 태아가 20주 이내에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통 '자연 유산'이라고 한다.
유산을 경험한 뒤 병원을 찾은 이들은 2013년 기준으로 1만7151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47명씩 유산을 경험했다는 얘기다. 어느 특별한 이들의 경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만 인원 중 자연 유산 비율은 평균 4.3%에 이른다.
40세가 넘는 고령 산모는 자연 유산 비율이 12%로 급증한다. 직장 여성들도 유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직장 여성들은 출산 직전까지 회사에 다니다 휴가를 떠난다. 직장 여성들에게 아침, 저녁 출퇴근은 힘겨운 시간이다.
임신 3~4개월까지는 유산 가능성이 큰 시기로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경우에도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임신 초기는 입덧도 상대적으로 심한 시기다.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때문에 10분도 서 있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 '만원' 지하철에 오르면 탁한 공기, 격한 냄새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몸이 너무 힘들어 앉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노인들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 폭언과 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임신한 이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에는 이러한 사례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정말 미안하고 안타까운 장면 아닌가. 장애인과 노인은 물론 임산부도 배려의 대상이 돼야 할 '교통 약자'다.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건장한 청년이나 중년 남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산부라는 것을 알리는 목걸이나 가방 고리, 산모수첩을 지녀도 소용없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들이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는 무용지물 아니겠나. 10월10일 '임산부의 날'도 이제 한 달이 흘렀다. 특정 기념일만 떠들썩한 관심을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식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임산부가 편안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캠페인은 1년 내내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작은 생명이 세상을 만나는 그 날까지 함께 보호해야 한다. 임신한 이들의 마음고생, 남몰래 흘리는 그 눈물을 우리 사회가 닦아주는 것은 어떨까.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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