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에 국회 일손 놓으니…예산안 자동상정될 판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정부·여당의 국정 과제 추진의 발목을 잡던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 이번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며 장외로 나간 야당의 대여 투쟁을 가로막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던 여권의 목소리도 반대로 잦아들었다. 하지만 예산 정국이 끝나면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거세게 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회는 4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인해 여야가 대치하며 본회의와 각 상임위원회 뿐 아니라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중단됐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이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대치 국면은 소강상태로 접어들 것이란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당초 여야가 합의한 본회의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내주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야당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국회로 돌아온 이면에는 예산안이 있다는 분석이다. 2012년 5월 탄생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은 헌법이 정한 법정시한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기 때문이다. 야당이 예산안 심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오는 12월2일 본회의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자동 상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실심사 논란과 함께 내년 지역구 예산조차 챙길 수 없게 된다.
야당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관계자는 "여당이 제의한 본회의 날짜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데, 우연이라고 볼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예산안 심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란 여권의 계산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선진화법으로 여권의 독주를 막아왔는데 야당의 투쟁도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유독 예산 관련 조항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앞서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예산부수법률의 경우 그해 예산의 집행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보조적인 수단이라고 봐서 직권상정(자동부의)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원래 취지에는 동의를 하나, 이를 과잉해석해서 직권상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과거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불만은 여권에서 강력하게 제기해 왔다. 특히 쟁점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5분의 3 이상(180석)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한 조항을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159석)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도 경제활성화법 등 주요 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국회선진화법을 지목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수차례 밝혔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예산 정국이 마무리되면 또 다시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노동개혁, 경제활성화법,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선거제도 개편 등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입법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서다. 정부·여당이 한목소리로 조속한 통과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야당의 협조 없이는 처리할 수 없어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의 운명도 좌우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당내에 국회법정상화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1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내년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해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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