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가르침따라 안동으로 내려간 김병일 前기획예산처 장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맡아
8년간 가르침 전파 … '선비처럼' 발간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ㆍ1501~1570) 선생이 살던 16세기와 지금 한국사회의 환경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지만 인간존중과 배려, 겸손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선비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와 교훈을 준다고 봅니다."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70)이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두고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재직하고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고희를 넘긴 그이지만 조선시대 유학자의 흔적을 따라 그 정신을 배우는 데 온전히 마음을 두고 있었다. 젊은 학창 시절부터 경북 안동의 역사유적지를 곧잘 다녀가곤 했던 그가 지난 8년간 퇴계의 고장에 머무르며 얻은 깨달음은 그의 신간 '선비처럼'에 차곡차곡 담겼다.
김 이사장은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의 나의 삶을 그와 비교해 보면 아주 후회스러운 것이 많다"며 "안동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퇴계 선생의 삶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이사장은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그 시대에 존대 받지 못하던 여인이나 신분이 낮은 이들을 대하는 이황 선생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됐다"며 퇴계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퇴계의 둘째 부인인 안동 권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퇴계는 이를 한 번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보듬어 줬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김 이사장은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집어 먹어 집안 어르신들의 질타를 받은 부인에게 퇴계는 '다음부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내게 말해달라'고 할 만큼 너그러운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퇴계의 이 같은 인품은 김 이사장이 신간을 통해 선비정신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선비정신은 지(智)와 덕(德)을 겸비하고 의리와 범절을 중시하는 자세를 말하는데 퇴계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비롯한 아랫사람들에게까지 예의를 갖춰 대했다.
김 이사장은 "선진국 문턱에서 헤매는 한국이 겪는 온갖 정치ㆍ경제ㆍ사회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퇴계 선생을 비롯한 선현들이 가르친 선비정신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각종 문제들은 정신문화의 뿌리가 약해졌기 때문이며 배려와 겸손, 공감의 가치가 살아 있는 사회가 행복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시대 500년간 이어져 온 선비정신이 크게 퇴색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다. 김 이사장은 "일제가 '문화정책'을 통해 '조선의 혼을 가르치지 마라' '조선의 조상을 폄하하라' '일본의 장점을 심어줘라' 등의 교육지침을 내렸다"면서 "해방 후 70년이 지났지만 그때 끊긴 선비정신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선비정신 중 남존여비, 사농공상과 같은 신분제 등 오늘날 사회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김 이사장은 "선비정신의 장점으로 조선이 500년간 이어졌다면 그릇된 점 또한 있어 600년까지 역사가 이어지지 못한 것"이라며 "다만 그릇된 것은 버리되 배워야 할 덕목마저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사람을 존중하는 것 등의 선비정신은 기업의 리더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질이다"고 강조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 이사장은 서울대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71년 행정고시를 거쳐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차관,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지냈다. 2005년 퇴직 후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2008년2월~)과 한국국학진흥원장(2009년8월~2014년8월)을 맡아 선비정신의 확산과 국학 진흥을 위해 힘써왔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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