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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뉴스] 퇴계 이황 “좌장지”로 陽物 설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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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 (1) '과연 정말로'라는 뜻의 순우리말 (2) 춘장을 볶은 중국풍 소스.
짜장뉴스는 각종 인터넷 이슈의 막전막후를 짜장면처럼 맛있게 비벼 내놓겠습니다. 과연? 정말로?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어린 시절 퇴계 이황(1501~1570)의 옆집에 살았다. 어린 항복이 퇴계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왜 남자의 생식기를 ‘자O’라고 하고, 여자의 생식기는 ‘보O’라고 하는 것이옵니까?” 퇴계가 항복을 꾸짖지 않고 설명한다. “남자의 생식기는 앉을 때 가려진다 해 ‘좌장지(坐藏之)’라 하고, 여자의 생식기는 걸을 때 가려진다 하여 ‘보장지(步藏之)’라 한다. 이를 짧게 줄여 부르는 것이 자O와 보O이다.”

[짜장뉴스] 퇴계 이황 “좌장지”로 陽物 설명했나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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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성기 명칭의 뜻을 설명하는 이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돌고 또 돕니다. 여기에 살을 더 붙여 그럴듯하게 꾸민 버전도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먼저 여기 등장하는 두 단어 ‘자O’와 ‘보O’의 유래를 찾아보겠습니다. 두 단어는 외래어였습니다. 중국에서 왔죠. 이는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간행된 중국어 어휘집 ‘역어유해’(譯語類解)에 두 단어가 표제어로 실렸다는 사실에서 확인됩니다. 역어유해는 1690년에 간행됐습니다. 이 어휘집은 중국어 단어를 문항별로 배열하고 발음과 뜻을 한글로 적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많은 사회가 성기 명칭과 같은 금기어를 외국어에서 가져와 쓴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두 부위를 우리가 가끔 써야 할 때면 영어로 부르는 것처럼 조선시대 사람들도 성기 명칭을 중국어에서 차용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중국어에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었는데도 외래어인 ‘자O’와 ‘보O’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단어는 외국 어디에서 중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조선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두 단어가 중국에서 왔다고 해도 한자 표기가 각각 ‘坐之’와 ‘步之’라고 했다면 위의 어원 풀이가 맞는 게 됩니다. ‘역어유해’에서 확인해보시죠.

[짜장뉴스] 퇴계 이황 “좌장지”로 陽物 설명했나 조선시대 중국어 어휘집 '역어유해'. 중국어 단어 아래 뜻이 적혀 있다. 남녀 성기를 가리키는 중국 단어 '기바'와 '비주'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중국에서도 외래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단어가 실렸다.


두 단어는 각각 한자(漢字) 두 글자로 표기됐고, 위 이야기의 표기와는 한 글자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낱말은 중국에서 왔지만 이 이야기가 전하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두 단어의 어원은 규명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퇴계의 일화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가 사실무근임을 입증하지는 못합니다. 퇴계가 두 단어의 어원을 오해해 실제로 저렇게 말했을 가능성은 남기 때문입니다. 퇴계가 석학이었지만 무불통지는 아니었을 테고 두 단어를 잘못 설명했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출처가 없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아시아경제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어떤 필자는 점잖게 “퇴계 이황의 일화가 아니라 율곡 이이의 이야기”라고 알려줍니다.


다른 곳을 보니 출처가 나옵니다. 책 ‘이야기 조선야사’라고 합니다.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읽어보니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에 수록한 야사는) 설화적인 분식이 다분하고 확실한 근거가 부여되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로 미루어 이 이야기는 민담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금기어 자리에 외래어를 끌어오는 관습이 반복될 경우, 두 단어는 몇 백년 뒤에는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료)
심재기, 국어어휘론 신강, 태학사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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