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한일 정상회담 개최, 朴대통령 '한일관계 신뢰' 강조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 확대를 포함해 역내 평화안정을 위한 양국 간 공조방안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국 갈등의 핵심 요인인 일본군 위안부 및 자위대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3년 반 넘게 중단됐던 양국 최고위급 회의를 재개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의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의미는 크게 부각됐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본관에서 만나 전날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은 한일 양자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청와대 도착 후 방명록에 '內閣總理大臣 安倍晋三(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만 쓰고 별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양 정상은 기념촬영 후 백악실로 이동해 1시간 동안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집현실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저는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올해 양국이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출발하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일본에도 한일관계는 진실과 신뢰에 기초해야 한다는 성신지교(誠信之交)를 말씀하신 선각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 회담이 아픈 역사를 치유할 수 있는 대승적이고 진심어린 회담이 되서 앞으로 양국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간 일한 양국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우호ㆍ협력의 길을 걸어왔고 함께 발전해왔다"며 "그것을 토대로 미래지향의 일한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기 위해 박 대통령님과 함께 노력하고자 한다"고 했다.
애초 30분으로 예정된 단출한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달 31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이 100분에 걸쳐 진행됨에 따라 형평성을 맞추는 취지에서 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회담 후 만찬을 함께 한 것과 달리, 한일 정상은 오찬 시간에 회담을 종료하고도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별다른 공식 일정 없이 곧바로 출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아베 총리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해온 박 대통령이 외교적 태도를 바꿔 한중일 및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 나선 것은,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리더십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취지가 있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를 '3국 협력의 완전한 복원'에 두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와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기념식 등 계기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3국 대화채널에 복귀토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박 대통령이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에서 "역사직시ㆍ미래지향 정신을 바탕으로 한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데 머문 것은 아베 총리를 궁지로 몰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화의 장'을 마련한 입장에서 판을 깰 수는 없으므로 민감한 주제는 피해가되, 향후 발전적으로 논의할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한중관계에 적극적인 박 대통령의 면을 살려주기 위해 한중일 정상회의에 나온 듯 행동하고 있는 중국 측은 여전히 일본과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 3국 협력의 완전한 복원은 여전히 불확실해 보인다. 리 총리는 1일 한중일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어진 중일 정상회의에서도 재연됐고, 리 총리의 공격에 아베 총리는 "특정 과거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세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받아쳤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동북아 군사긴장 상태를 완화하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별다른 소득 없이 한일 정상회담에 응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직접 사과 ▲주한 일본대사관의 피해자 면담 및 사과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피해자 보상 등을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일본 측이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만큼, 이날 회담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눈에 띄는 진전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중·일 3국의 연례 정상회의 공식 명칭은 주최국-차기 주최국 순서로 표기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공식적으로 '한·일·중'이라 표기하는 이유다. 그러나 본지는 관례에 따라 한중일 정상회의로 적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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