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본 경영 패러다임 변화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기업들의 주주환원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과거 성장 위주 정책으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정책에 소홀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가치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9일 총 11조3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우선 1차로 내년 1월말까지 보통주 223만주, 우선주 124만주 등 4조1841억원 규모 자사주를 장내매수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분기배당제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삼성화재(5320억원)·한화생명(5203억원)·네이버(1859억원)·삼성증권(1188억원) 등도 주가 안정 및 주주환원을 위한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놨다.
포스코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분기배당제를 시행하는 동시에 그룹 내 임원들이 퇴직할 때까지 매달 급여의 10%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쓰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주로 주가 하락을 막고 최대주주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코스피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지난 7월 3000억원 수준에서 8월 6394억원, 9월 7680억원으로 늘었다.
미국 대기업들도 자사주 매입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980년대 이익의 10% 미만에서 1990년대 초 약 23%로 두배 가량 늘어난 데 이어 2011년 이후에는 47% 수준까지 확대됐다.
일각에서는 자사주 매입 규모 증가가 자산 및 설비투자 감소로 이어져 기업의 미래 성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등으로 주주들에게 되돌려준 현금 규모는 이익의 약 85%선으로 1990년대 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982년 자사주 매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이래 배당금 비중은 줄고 자사주 매입 비중은 증가한 것이다.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자사주 매입 비중 확대는 기업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배당의 경우 한번 지급하면 기업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그 규모를 줄이기가 쉽지 않은 반면 자사주는 매입 규모의 조정이 용이하고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저소비가 고착화된 뉴노멀 시대에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배당보다 더 적합한 주주환원 정책인 셈이다.
금융투자업계도 기업들의 이 같은 자사주 매입 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글로벌 경쟁사 대비 저평가됐던 원인이 비교적 인색한 주주환원 정책과 IM(IT·모바일)사업부 이익 급감 우려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과 이번 실적은 주가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황준호 KDB대우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가 역대급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재평가될 전망"이라며 "주주환원 가능 금액은 올해 4조8000억~8조원이며 내년에는 5조5000억~9조2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박민규 기자 yush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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