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중국 베이징 인근에 의류생산공장을 가동 중인 A사는 최근 소방설비가 미비하다는 당국의 지적을 받아 공장이전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최근에 강화된 소방규정을 모두 준수하려면 공장을 신축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 공장이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인근에 한국인이 100%를 투자한 가구생산업체도 분진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지만 가구업종은 예외 없이 이전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아 사업 지속 여부를 고민 중이다.
중국 정부가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도심 인근에 입주해 있는 공장들을 외곽이나 다른 성(省)으로 이전을 강요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 삼고양저(三高兩低)를 퇴출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애매하고 광범위하다는 특징이 있다. 삼고양저(三高兩低)는 고오염, 에너지 고소모, 고배출, 저효익, 저생산성 분야의 업체를 의미한다. 특히, 베이징시는 징진지 발전방안과 환경보호(공기정화 등)를 강구하면서 대규모로 공장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ㆍ텐진ㆍ허베이성의 약자) 정책은 성급 도시인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등 3개 지역을 전략적이고 종합적으로 개발해 중국 북방의 성장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시진핑주석이 올해 2월에 '징진지 클러스터 발전방안은 중대한 국가적 계획'이라고 강조하면서 급속히 부상했다.
베이징시는 '공기청정 행동규획'에 오는 2017년까지 오염원을 배출하는 기업 300여개를 선정해 타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이전기업 수는 이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28일 무역협회 베이징지부에 따르면 베이징에 입주해 있는 한국 투자기업들은 환경오염 유발업종 등의 이유로 이주를 준비하거나 아예 폐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오염 유발업종 등에 대한 강제이주를 유도하고 있는데다 환경 및 소방설비 기준이 강화되고 있어 현재의 공장부지를 고수하는데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앞서 두 회사 외에도 방수재로 사용되는 에폭시 도료를 생산하고 있는 한 업체는 이전 요구를 받고 있어 조만간 공장이전에 나서야 판이다. 자동차 엔진 주물생산업체는 올해 말까지 공장을 이전하라고 통지를 받아 이전시기와 지역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도시계획 변경을 이유로 외곽으로 이전하라는 요구는 베이징 이외의 여타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난징시는 '삼고양저(三高兩低)'라는 이유로 173개 기업의 공장이전을 유도한 바 있다. 행정처분에 의해 공장이전을 요구하면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지만 보상수준이 기업과 지방정부 간에 큰 차이를 보여 협상타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사례도 있다.
대도시에서 공장을 가동하던 한 업체는 20여년 전에 중국에 진출해 50년간 공장부지 사용권을 획득한 후에 공장을 가동해왔다. 그러다 지방 정부가 대체부지를 제공하면서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라고 요구, 이전보상을 두고 상당기간 협상을 진행한 후에 타결했다. 한 유통업체는 최근 매장이전을 요구받고 지방정부와 보상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원만한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공장이전 요구를 당했을 경우 변호사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기업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충분한 보상(지방정부 장려정책 활용)을 받을 수 있도록 세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무역협회 북경지부는 "기업의 공장이전은 경제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무, 노무인사, 행정등기 변경 등 일련의 법률문제가 동시에 발생함을 감안하여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장이전을 결정하기 전에 새로운 부지를 먼저 결정하고 근로자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강구(통근버스 제공 및 기숙사 건립 등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경지부는 또한 "중국 지방정부의 행정조치에 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대사관(또는 총영사관) 관련 전문가의 자문과 협력 하에 공장이전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서 "지방정부 조치의 근거와 결정사항을 문서로 요구해 대사관의 전문가와 함께 보상협상을 진행하면 보다 원만한 성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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