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일 아닌 '길고양이' 갈등…중성화 등 개체 수 조절이 근본 대안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원다라 기자]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김모(29)씨. 그는 같은 연립주택에 사는 '캣맘'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음식물 냄새, 고양이 울음소리로 잠을 설친적도 적지 않다. 그는 "다른 집은 층간소음 때문에 싸운다지만, 우리집은 고양이 때문에 싸운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일명 '캣맘' 이모(30)씨. 10년째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온 그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이씨는 "캣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도 크게 혼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사람 때문에 살 곳을 잃은 동물들에게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발생한 '캣맘' 사망사고로 길고양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생명 존중'을 위해서는 용인될 수 있는 문제라는 캣맘 측의 주장과,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확대 등을 통한 개체수 조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경기 용인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양이집을 만들던 박모(55·여)씨가 갑작스레 떨어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누군가 고의적으로 벽돌을 던졌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길고양이에 밥을 주는 캣맘과 이웃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도시 내 길고양이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먹이를 주는 시민과 이에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간의 갈등이 극단적 사례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지난 2012년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던 50대 여성에게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여성을 폭행한 뒤 음식물 쓰레기 통에 집어 넣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2013년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캣맘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이 지하실의 철문을 잠궈 수십마리의 고양이가 폐사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캣맘과 지역주민간의 갈등의 원인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길고양이 개체수가 꼽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를 떠돌며 살아가는 길고양이의 숫자는 2013년 기준으로만 25만 개체에 달한다. 동물보호단체 등에서는 길고양이가 전국적으로 약 100만 개체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서울시나 강동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캣맘협의회' 등을 조직하거나, 길고양이들에게 체계적인 급식을 제공하는 등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급식을 제공하게 되면 특정 주거지역에 길고양이가 몰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길고양이들에게 급식을 지원하는 식의 방안은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정주거지역에 길고양이가 몰리는 문제는 해소될 수 있어도, 지역내 길 고양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민들의 우려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체 수 줄이기'가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현재 서울 강동구 등 일부 지자체 차원에서만 진행하고 있는 길고양이 중성화 후 방사(TNR)에 예산을 더 투입,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TNR 사업을 추진 중인 강동구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시행한 시술 건수는 모두 423건에 불과하다. 서울의 1개 동(洞)에 서식 중인 길고양이가 약 600 개체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구 관계자는 "1마리 당 30~40만원에 이르는 TNR 예산 탓에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제공하는데 그치고 있다"며 "TNR 까지 추진하는 캣맘들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녹색당은 "급식소 운영과 NTR은 갈등의 불씨가 되는 길고양이 개체수 증가에 관한 대책"이라며 "현재 일부 몇몇 지자체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길고양이 대책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일선 지자체의 결단과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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