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자산 매입 규모가 516억유로라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8월 ECB 자산 매입 규모는 ECB가 대규모 양적완화에 돌입했던 지난 3월 이후 최저라고 보도했다. ECB는 5월과 6월에는 630억유로, 7월에는 610억유로의 자산을 매입했다. 블룸버그는 여름 휴가 기간을 맞아 유동성이 줄면서 8월에 ECB의 자산 매입 규모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일 기준으로 ECB는 공공 부문 채권을 3014억유로, 커버드본드 1122억유로, 자산유동화증권(ABS) 115억유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8월 한달동안 공공 부문 채권을 428억유로, 커버드본드를 75억유로, ABS를 13억유로어치 매입했다.
ECB는 내년 9월까지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진행할 계획이다. 8월 매입 규모가 줄긴 했지만 ABN암로의 킴 리우 채권 투자전략가는 "ECB의 양적완화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ECB가 양적완화를 통해 도모하고자 했던 경기부양 효과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로 간신히 디플레이션을 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ECB의 양적완화 정책이 특히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지난주 통화정책회의에서 양적완화 확대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양적완화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비금융 부문 유럽 기업들의 현재 보유 현금은 1조100억달러 수준으로 2008년보다 40% 이상 늘었다. ECB 덕분에 시중 유동성은 크게 늘었지만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쌓여만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양적완화에 따른 저금리 환경이 기업 투자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독일 지멘스는 지난달 북부 해안의 쿡스하펜의 새 풍력터빈 공장에 2억유로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랄프 토마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당시 투자가 양적완화나 저금리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투자는 경제성장이나 이익 가능성, 기술혁신으로 인한 진입장벽이 제거됐을때 이뤄진다"며 "금리가 낮다고 해서 투자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의 커트 보크 최고경영자(CE)도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이 투자 확대 요인은 아니다"라며 "성장 전망을 보고 지출을 늘리는데 유럽의 경제성장 전망은 미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기업 투자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2010~2011년 반짝 살아나는듯 했지만 최근 독일과 프랑스의 기업 투자는 다시 정체된 상태다. 기업들은 유로 약세 덕분에 수출이 늘고 있음에도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올해 세계 자본지출이 10% 이상 줄 것으로 예상했다.
컨설팅업체 KPMG의 이고 베르트람 선임 매니저는 저금리 환경에서는 투자 수익률에 대한 기대도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저금리 환경에서는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도 많아 특정 프로젝트에 수주 경쟁도 치열해 투자 수익을 낮게 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누스 캐피털의 빌 그로스 포트롤리오 매니저는 "저금리 환경은 한계기업의 생명을 연장해주지만 그만큼 혁신적인 경쟁업체들의 출현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은 기업간 경쟁을 통해 이뤄지는데 저금리 정책 때문에 경쟁이 제한되면 혁신도 더딜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저금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위기의 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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