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북 간의 긴장사태로 인해 삼성이나 롯데그룹의 뉴스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권승계라는 이슈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의 승계는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단지 감정적으로 배가 아프다고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것이나 롯데의 경영권 승계가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기업의 역할만 제대로 지킨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물론 국민 감정상 롯데의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들을 볼 때에 국방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한국말도 못하고 자녀들도 일본 국적인 것을 알았을 때에 느껴지는 배신감과 충격은 실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롯데나 삼성이라는 기업의 국적을 따진다는 것은 국제화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주주의 실질적인 국적이나 외국인 주주의 비율을 본다면 롯데나 삼성 모두 한국기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 논리라면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해 있는 우리의 기업들 모두 진출한 나라에서 배척받아야 한다. 국적 문제는 지극히 감상적인 이슈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기업의 기여도다. 기업의 국가 기여도는 고용이나 투자, 세금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순수한 국적의 대한민국 기업이라 하더라도 부실기업이 된다면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수많은 직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투자손실을 입게 되는 주주들을 생각했을 때 국가에 누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업은 국적에 앞서서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 덕목이다. 만약 삼성물산의 합병이나 롯데의 경영권 분쟁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면 우리는 이를 박수를 쳐주면서 환영해야 한다.
두 기업 사태의 공통점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렇게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기업합병(M&A)을 하거나 경영권 사수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부의 승계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부의 승계와 경영권 승계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기업의 경영권은 무엇보다도 경영자의 경영능력으로 평가돼야 한다. 장남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이 능력 있는 경영자가 경영을 맡아야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우리는 능력 없는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가 망한 기업들을 이미 많이 봐 왔다. 삼성이나 롯데는 그렇게 망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큰 기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겨줘야 할 기업이다. 더 이상 대주주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승계받아서는 안 될 세계적인 기업이다. 외국에도 월마트나 BMW와 같이 가족기업으로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들 기업이 수백 년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경영자에게 경영권을 맡겼기 때문이다.
삼성과 롯데뿐만이 아니라 경영권 승계를 앞둔 모든 기업에게 묻고 싶다.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것이 과연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경영능력이 없다면 부의 승계로 그쳐야 한다. 그리고 경영권 승계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우리의 기업들은 이미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영능력을 갖춘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겨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평가 잣대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고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도 주주로서의 기업가치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이 창조경제를 향해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길일 것이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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