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가 치러야 할 마지막 시험은 얼마나 후계자를 잘 선택하는지와 그의 후계자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양보할 수 있는 가이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의 말이다.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보유해야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경영권의 승계다. 실제로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경쟁력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정적인 만큼 경영권의 승계나 교체는 거의 모든 조직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이다. 원만한 경영권의 승계에 실패할 경우 기업은 하루아침에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공들여 쌓아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게 돼 원상을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계는 전임 경영자의 사퇴나 유고 시에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사퇴나 유고 시의 승계는 정확히 말해서 승계가 아니라 교체 내지는 대체나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가 중요한 만큼 그 승계과정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미리 계획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최고경영자의 신체적 변화에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황이 생겨야 승계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승계를 계획하고 관리해야만 승계에 따른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바로 승계 계획 프로그램이다. 부득이한 경우 말고는 좀처럼 후계자를 미리 정하지 않는 게 관례처럼 돼 있는 한국에선 다소 낯선 프로그램이지만 외국에선 어느 정도 일반화된 프로그램이다.
승계 관리의 성패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GE와 AT&T이다. 두 기업 모두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고 세계적 대기업이지만 승계 관리에서의 차이가 기업 위상에선 큰 차이를 초래했다. GE의 경우 승계 관리 프로그램이 체계적인 걸로 정평이 나 있다. 잭 웰치 회장의 경우 후보군에 처음 포함된 지 무려 9년 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처음엔 96명에서 출발했다가 1년6개월 뒤 12명으로 좁혀진 후보군에 대해 그 후 수년 동안 각자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평가하고 꾸준하게 면접을 실시함으로써 끊임없이 대상자를 좁혀 나가는 장기적인 관찰 평가 및 축약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리더십, 일관성, 결단력, 대인판단 능력, 장기적 안목, 자기관리 등 최고경영자에게 필요한 모든 항목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잭 웰치 자신도 은퇴를 7년 앞둔 시점에서 이사회 승인을 거쳐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해 결국 후임 이멜트 회장에게 승계한 바 있다.
반면 기업 위상이 비슷했던 AT&T의 경우 최고경영자가 권력을 독점한 채 승계 계획에 소홀히 하다가 결국 기업 자체가 위기를 겪어 위상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사에 의하면 연간 매출액 5억달러 이상 기업의 경우 절반 정도의 기업이 승계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8년 전 창업 이후 오너 가문이 5대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 독일의 BMW지분의 47%나 보유하고 있는 콴트 가문 모두 엄격한 승계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후계자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연히 승계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제왕적 리더일수록 경영권을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만큼 물려주기를 아까워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회사를 키우는 데에는 열과 성을 다했어도 승계에 소홀히 할 경우 기업으로선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최근 가족 간에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롯데그룹, 형제의 난으로 불렸던 현대그룹의 경우를 보면 승계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기업의 이미지와 경쟁력이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면 삼성그룹이 오늘날의 위상을 쌓게 된 것도 후계 구도를 미리 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온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계에 소홀하다는 한국 기업의 현실이 그만큼 가족 경영이 일반화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 몸처럼 키워온 기업이 지속가능한 100년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업을 키우는 일 못지않게 승계를 계획하고 잘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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