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카오스 이론의 토대가 되었던 기상학자 고(故) 에드워드 로렌츠 박사의 ‘나비효과’는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킨 날갯짓이 대기의 흐름을 변화시켜 텍사스 주에 이르면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초기의 미미한 변화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긴 한데, 그럴 수 있다는 것일 뿐, 과학자들은 아직 ‘나비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의 정확한 움직임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비효과가 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에서 나비효과는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서기 378년 8월, 터키 북서쪽의 아드리아노플. 소아시아와 발칸반도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였던 이곳에서 동로마 제국 발렌스 황제가 직접 이끄는 7개 로마군단 4만 명의 병력과 고트족 병력 5만 명이 한 판 전투를 치른다. 결과는 고트족 기병의 전력에 밀려 발렌스 황제까지 목숨을 잃었을 만큼 로마의 대 참패.
이 전투의 패배로 로마는 고트족의 자치권을 넘어 로마 영내로 밀려드는 게르만의 대이동으로 결국 망하게 되고 유럽은 보병 중심에서 중무장 기병과 기사계급을 배경으로 봉건왕조 시대를 여는 역사적 대전환의 계기를 맞는다. 그런데 고트족이 로마 영내를 넘보게 된 것은 강성해진 한족에게 서쪽으로 밀린 훈족에게 고트족이 더 서쪽으로 밀린 이유였다. 나비효과의 전형인 것이다.
서기 612년의 동아시아. 수 나라 30만 대군이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괴멸을 당하고 망했다. 우리는 ‘어떤 역사’ 교육을 통해 ‘살수’가 그저 청천강이라고 배웠는데 살수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불명이다. 지금은 압록강 너머 중국 땅 어디일 거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서기 645년, 이번에는 당태종 이세민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요동성, 백암성을 차례로 함락한 그는 안시성 성주에게 대패한다.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역사시간에 분명히 배웠는데 사실은 그마저 정확하지 않다고 하니 웬 역사가 이리 고무줄이냐 싶지만, 중요한 것은 ‘안시성이 압록강 변의 의주 어디쯤에나 있었겠지’ 하는 우리의 착각이다. 요동성, 백암성, 안시성은 북경에서 가까운 중국 땅에 있었다. 광개토대왕 릉과 비가 길림성에 있는 것도 ‘어쩌다 그곳에 말 타고 가서 세웠겠지’가 아니라 원래 고구려 수도가 그곳의 국내성이었다.
수 나라, 당 나라의 고구려 침공과 나당연합,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 백제, 신라, 당나라의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 전쟁의 큰 그림은 돌궐(투르크-터키), 토번(티벳), 중국, 일본, 한반도가 얽힌 동아시아의 패권 경쟁이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나라가 고구려 총독 설인귀를 내세워 토번을 점령하려다 티벳 고원에서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로렌츠 박사의 나비효과가 적용되는 지점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역사적 시각을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 이제는 휴전선 남쪽으로 자진해서 축소해 왔던 것일까. 우리가 주인이었던 대륙 간도를 일제가 중국에 넘겨준 것이 불과 한 세기 전인데 말이다. 비록 지금 고립된 섬(?)이지만 우리는 과거 유라시아 초원을 다투었던 대륙민족이었다. 모두 816페이지 분량이다. 여름 휴가철, 책 읽다 낮잠의 베개 삼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펴냄 / 3만 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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