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늪에서 허우적대는 그리스...침체 늪에서 탈출 중인 이탈리아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금융위기는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양국 모두 공공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다 두 자릿수 실업률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달리 시중 은행 문을 닫지 않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지 않으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고려하지 않는 걸까.
이탈리아는 현재 정상적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이탈리아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FTSE MIB)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25% 올랐다. 그리스 경제가 지난해 반짝 반등한 뒤 다시 슬럼프에 빠진 반면 이탈리아는 기록적인 경기침체로부터 점차 회복 중이다.
이탈리아 로마 소재 유럽 제4의 석유업체인 에니는 세계 시장에 석유를 하루 170만배럴이나 공급한다. 군수업체 핀메카니카는 영국ㆍ중국 등 많은 나라의 기업과 군에 헬기를 판매한다. 이탈리아 국영 조선소 핀칸티에리에서는 크루즈 선사 카니발의 배가 건조된다.
펜디에서 페라리에 이르는 이탈리아 명품 제조업체들의 제품은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각광 받고 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는 독일 다음으로 제조업체가 많다.
선물거래 서비스업체 ADM 인베스터 서비시스의 영국 런던 주재 전략가 마크 오스트월드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그리스가 내세을 것이라곤 관광업과 조선업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1ㆍ4분기 이탈리아의 수출이 3% 증가한 반면 그리스는 7.5% 위축됐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관광산업은 매출 340억유로(약 43조378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그리스의 거의 3배다. 게다가 이탈리아 인구는 6000만으로 그리스의 5배가 넘는다.
이탈리아가 현재 보유 중인 금의 가치는 900억달러(약 104조900억원)로 그리스의 20배를 웃돈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45%로 그리스의 65%보다 현저히 낮다.
게다가 유로존 기관들은 그리스의 비극이 이탈리아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다달이 600억유로어치의 회원국 국채를 사들인다. 수익률이 사상 최저이기에 이탈리아는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부채 상환용으로 돈을 빌리는 데도 채권단의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
세계 경제 정보 서비스 업체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라지 바디아니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했다.
물론 이탈리아가 제2의 그리스로 전락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 이은 유로존 부채위기로 이탈리아는 전후 가장 심각하고 오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현재 2조3000억유로에 이르는 국가부채는 GDP의 132% 수준이다.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2007년 이래 이탈리아의 산업생산은 25% 쪼그라들었다. GDP는 9% 위축됐다.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2.5%에 이른다. 청년 실업률은 무려 45%다. 밀라노 소재 카톨리카 대학 경제학과의 이보 페추토 교수는 "영어 등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나갈 정도"라고 지적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40)는 노동시장 개혁을 적극 밀어 부치고 있다. 개혁이 성공할 경우 인력 고용과 해고가 쉬워지고 제조비용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업률이 치솟고 근로자 임금이 줄면 소비가 감소하거나 부채가 늘 수 있다는 점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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