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판소리와 재즈가 한데 어우러진다. 11일 문화예술공간 창선당에서 열리는 ‘그룹 지리 콘서트’에서다. 판소리 명창 배일동(51)과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46), 트럼펫 연주자 스콧 팅클러(51) 등이 80분의 무대를 즉흥으로 꾸민다. 여는 마당에서 ‘이별’, 타는 마당에서 ‘사랑’, 맺는 마당에서 ‘만남’이 그려질 예정.
이미 미국, 독일, 터키, 이스라엘 등에서 선보인 공연이다. 배일동은 “판소리와 재즈는 형태와 성질이 다르다”면서도 “내포한 정서가 닮아 곧잘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춘향이의 고통과 설움, 심봉사의 한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재즈의 추상적인 아름다움 위에서 거칠고 투박한 음색이 사실적으로 전달돼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고 했다.
해외 공연에서 자막을 쓰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흥 공연이기도 하지만 잔잔한 선율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정감을 나눌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배일동은 “문학적 어법이 중요한 판소리지만 글을 잘 모르던 평민이 즐겨들었다”며 “소리에서 주는 감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그는 판소리에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시켜왔다. 서커스, 전시 등이다. 다양한 시도로 우리 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초석을 쌓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배일동은 “새로운 양식이나 창작도 중요하지만 판소리에 대한 더 깊은 성찰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본질에 대한 해석이 너무 추상적으로만 나열돼 있다”며 “왜 장단이라고 부르는지, 훈민정음과 인문학적 연계성이 어떠한지 등을 꼼꼼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류와 문화 강대국으로의 도약은 그 다음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에 판소리의 교과서로 여길 만할 책은 거의 전무하다. 특유 3박자 소리에 대한 기술과 이해를 다룬 것이라면 더 그렇다. 오히려 일부 성인가수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가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의 청량한 목소리에 대한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기관들은 이들에게 상도 수여한다.
배일동은 “판소리의 대중화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잘못된 전달로 그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발자취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고 이를 실행할 시스템마저 불안정하다면 품격을 지키는 방향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대중은 물론 세계화와 멀어지더라도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일동은 구식에 능숙하다. 지리산에 들어가 7년간 독공해 득음했다. 그는 “출가자의 정신으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각고로 끌어올린 건 소리 기술만이 아니다. 나무, 계곡 등을 벗 삼으며 다양한 감성을 끌어냈다. 판소리 특유 직설적 표현으로 일관하는 듯 보이지만 소리, 얼굴 표정, 몸동작 등으로 미묘한 감정을 잡아낸다. 다양한 장르와 결합에서 그가 자유로운 이유다.
특히 배일동은 비애의 미와 한의 정서를 표현할 때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아름다움을 비극적 역사에서 유래한 슬픔의 그것으로 이해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적 정감을 보다 사실적으로 전하기 위한 역사적 접근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