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상래]
무안(務安)은 예부터 사람이 편안하기 위해 힘쓰는 고을이다. 그래서일까. 무안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일찍이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 선생은 자신의 호 한호(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뜻)에 걸맞게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몽탄 영산강 유역에 식영정을 짓고 강학소요처로 삼았다.
6월 농사철이 끝나면 인근 마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회산백련지에 있는 숲으로 정자로 천렵을 나온다.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재충전하기 위해서다.
동양 최대인 10만여평을 가득 채운 초록빛 연잎 사이로 고개를 내민 백련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제각각의 시간에 꽃을 피우고 또 진다.
그러기에 연꽃이 만발한 풍경은 보기 힘들지만 6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쉬엄쉬엄 피고 지는 연의 한가로움에 젖을 수 있다. 넘치지 않는 여유로움을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백련지’는 세속의 일들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요염한 자태로 무리 지어 피는 노란 물양귀비, 보랏빛 꽃잎에 가시가 돋친 멸종위기 식물 가시연, 앙증맞은 노란 개연, 등잔 위에 띄워놓은 불꽃같은 애기수련, 순채, 물옥잠, 택사 등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십여 종의 수생식물이 즐비해 눈을 즐겁게 한다. 올해는 멸종위기식물인 가시연꽃 수백그루를 심어 화려함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꽃의 원산지는 인도. 우리나라에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오래 전부터 재배돼 왔다. 우리나라에는 붉은 꽃을 피우는 홍련이 대부분을 차지해 백련은 아주 드문 편이다. 이곳처럼 백련으로 뒤덮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불가에서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 해서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긴다. 연꽃을 만타라화(부처가 설법할 때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꽃)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백련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돌다리는 연꽃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다. 백련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백련지 둘레길은 십리가 넘어 한 바퀴 도는 데만도 1시간 넘게 걸린다.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곳곳에 세워져 더위를 식혀준다.
백련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마을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기로는 일제 강점기 때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평범한 저수지였다.
그냥 저수지였던 이곳이 아름다운 연꽃으로 가득한 생태공원이 된 것은 한 농부의 꿈에서 시작됐다. 마을 주민 정수동씨는 1955년의 어느 여름 밤, 하늘에서 열두 마리의 학이 저수지에 내려앉는 꿈을 꿨다고 한다. 다음날 동네 아이들이 연뿌리 열두 포기를 주워 왔다. 정씨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심고서 정성껏 가꿨다. 연꽃은 세월의 굽이만큼 번져 갔다.
1981년에는 영산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수량이 줄어들어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연 방죽’으로 방치됐다. 행운이었다. 쓸모없이 방치된 덕분에 연꽃은 제 세상인 양 불어나 지금의 드넓은 백련지를 이뤘다.
1997년에 ‘무안연꽃축제’가 처음 시작되자 관광객들의 입소문이 번져 이제 남도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제19회 무안연꽃축제’가 열린다. ‘백련향기 찾아 떠나는 힐링여행’이란 슬로건 아래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된다.
올해부터 무안군은 입장료 몫으로 소정의 주차비를 받을 예정이다. 대신 접근성이 좋은 일로읍 등 인근 마을에서 백련지까지 셔틀버스 운행을 대폭 늘려 주차난도 해소하고 관광객들의 힐링을 깊게 할 방침이다.
노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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