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저예산영화.' 과거 미국에서 동시 상영용 B급영화를 지칭한 용어다. 지금은 규모와 예산이 적은 영화를 통칭한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영화 '마돈나'는 여기에 속하고도 남는다. 총 제작비 4억 원. 미국 배우조합이 저예산영화의 최저 기준으로 설정한 80 만달러(약 8억8664만원)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뿜는 기운은 웬만한 메이저 영화 이상이다. 이미 유럽을 매혹했다. 지난 5월 24일 끝난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독창성에서 완성도가 좌우되는 환경을 극복한 것은 물론 정체된 한국영화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영화는 극단적 환경에 몰린 두 여자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모성을 그린다. 병원 VIP병동에서 조무사로 일하는 해림(서영희)은 병원의 실질적 소유주인 사지마비 노인 환자를 맡는다. 환자의 아들 상우(김영민)는 아버지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실려 온 임신부 미나(권소현)를 심장 기증자로 지목하고 해림에게 미나의 가족을 찾도록 지시한다.
신수원(48) 감독은 슬픔과 구원의 메시지를 더블플롯(두 가지의 이야기를 서로 엇섞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일)으로 전달한다. 그 손길은 치밀하고 섬세하다. 초반 전개에 미스터리 요소를 넣어 몰입감을 높였고, 혜림의 현재와 그가 추적하는 미나의 과거 플롯을 균형 있게 제어했다. 그렇게 끌어낸 힘은 미장센과 어우러져 갑절이 된다. 좁은 화각과 어두운 조명으로 VIP 병동의 폐쇄적 느낌을 배가하는가 하면 와이드 샷으로 갈대숲의 혜림과 도시의 이질감을 극대화한다. 압권은 고가도로 아래 주차장에서 미나가 윤간당하는 장면이다. 멀리서 바라보던 카메라가 크레인 샷으로 전경을 비추는데 이때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전혀 다른 세계로 그려진다. 신 감독은 "세상의 어두운 단면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는 윤간, 성추행 등 남성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이 더러 삽입됐다. 그렇다고 남성폭력의 문제만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태연자약함을 주요 캐릭터에 모두 담았다. 주인공 혜림과 미나마저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심부름을 한다. 복수심 때문에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상우로부터 복합적인 감성을 이끌어내 그 역시 욕망의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욕망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다. 신 감독은 "인간 누구에게나 악마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충돌해 비극에 이르는 것이 한국 사회 이면의 병적인 모습과 닮아 있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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