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메르스 보다 각종 음모론·마타도어가 더 아픈 상황"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요즘 삼성 서초 사옥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파동에 이어 메르스의 진원지로 '삼성서울병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국내 최고였고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는 게 지금까지 삼성그룹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였다면, 그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난 셈이다.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삼성이 뚫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란 말이 국민들의 정서까지 자극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틀린 게 아니지만, '삼성이 오만하다'는 부정적 정서를 증폭시켜버렸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미래전략실을 비롯한 삼성그룹 수뇌부들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늘어간다.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의 위기가 어느 때 보다 더 크게 다가오고 있는 데는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는 그간의 믿음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점도 한 몫하고 있다.
삼성엔 그간 숱한 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특유의 리더십으로 그 위기를 돌파해왔다. 삼성의 신경영은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든 선언이었다.
회장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다시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꾼 삼성의 헤드쿼터는 그간의 과정을 웅변하는 명칭들이다. 그리고 그 위기 돌파의 핵심엔 언제나 이건희 회장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빈자리가 커 보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지금 상황에서 그룹 내부에 이건희 회장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다면 삼성서울병원이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엘리엇에게 공격당하는 이런 상황이 왔겠느냐는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미래전략실의 또 다른 고위임원은 "이재용부회장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아직 승계를 마치지 않아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 역시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삼성에겐 유독 혹독한 잣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곤혹스런 부분이다. 어려움에 처한 집단이나 사람에게는 동정을 갖는 게 우리의 미덕인데 삼성에게만은 예외다.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한 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대표적이다. 삼성물산의 한 임원은 "엘리엇 사태를 보면 삼성이 이렇게까지 미움과 오해를 사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삼성에 대한 각종 음모론 마타도어가 엘리엇의 공세보다 더 아픈 상황"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뭇매 역시 마찬가지다. 전 의료진이 메르스 사태 확산 방지와 확진자 치료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료진의 노력은 간과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사태 발생 후 전 의료진이 공식 사과했다.
숨 가쁘게 진행된 사업재편 과정 속에서 임직원들의 애사심도 약화됐다. 근거없는 루머가 삼성그룹 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매각 될 수 있다는 생각(한화와의 빅딜), 우리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부 메신저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루머가 오르내린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내부의 루머 양산 수준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현재 삼성그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임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삼성그룹 경영진은 위기를 추스르고 있다. 조만간 그룹 차원의 대책도 준비중이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어느 시기에나 과도기와 전환기에는 위기가 오게 마련"이라며 "위기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교훈 삼아 배우고 다음번 위기가 왔을 때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과도기에 당면해 있다"면서 "지금의 위기를 정면 돌파해 나간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 역시 입증 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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