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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와 도사, 관록과 感의 시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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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실화 다룬 영화 '극비수사'
곽경택 감독 특유의 사회부조리 담아...김윤석·유해진 연기호흡 자랑

형사와 도사, 관록과 感의 시너지 영화 '극비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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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근래 범죄영화들은 스릴러의 성격이 짙다. 짧은 컷과 화려한 편집은 물론 다양한 극적 장치로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유도한다. 곽경택(49)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18일 개봉)는 유괴사건을 다루지만 이런 주류와 거리가 멀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흥분, 공포, 분노 등은 뒤섞여있다. 하지만 그 전개가 시종일관 차분하다. 극적 갈등이 해소된 뒤의 이야기에 이례적으로 10분 이상을 할애해 지루한 느낌마저 들 수 있다. 실제로 제작진은 후반작업에서 상업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온갖 우려에도 곽 감독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두 가지 '인정'에 중점을 두어서다. "인정(人情)의 힘을 보여주면서 인정(認定)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극비수사'는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1978년 여름, 부산 재력가 집안의 어린 딸이 납치된다. 아이 엄마는 점집을 전전하다가 김중산(유해진 분) '도사'로부터 아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관할서 밖의 형사 공길용(김윤석 분)에게 따로 사건을 의뢰한다. 아이의 몸값이 1억5000만원에 달한 사건은 당시 열두 살이었던 곽 감독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유괴된 아이가 친동생 곽신애(47) 바른손필름 대표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며 "형사들이 동네를 수시로 드나들고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했다. 곽 감독은 '친구2(2013)' 대본 작업을 하다가 만난 공 형사로부터 신문 보도 이면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공을 세우고도 인정받지 못한 인물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형사와 도사, 관록과 感의 시너지 영화 '극비수사'

이를 다루는 손길은 정통적인 내레이션이다. 부드럽고 섬세하다. 기세훈(41) 촬영감독은 "기존 추격, 액션물에서 사용하는 기계적이고 거친 샷을 피했다. 인물의 감정, 호흡을 잡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 샷과 바스트 샷이 많이 등장한다. 미묘한 감정 변화는 간간이 배치된 풀 샷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괴범으로부터 처음 협박전화가 걸려오는 씬이 대표적이다. 편집 없이 한 컷으로 이어지는 '원 씬 원 테이크(One Scene One Take)'로 처리, 공길용과 아이 부모의 감정 곡선을 고스란히 잡아냈다. 기 감독은 "몇 안 되는 풀 샷을 롱 테이크로 찍어 작위적인 느낌을 덜었다"면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데 많이 곤혹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곽 감독은 캐스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특히 부조리한 형사 역이 걸린 오디션이 그랬다. 그는 "울분에 차 스스로 비겁해지는 표정을 지어달라고 주문했다. 그 연기를 못 하면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바가 퇴색될 것 같았다"고 했다. 선발된 연기자들은 촬영장에서도 곽 감독의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얼굴에 웃는 근육이 생기면 비겁함이 덜 해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농담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사실 가장 애를 먹은 배우는 주연을 맡은 김윤석(47)과 유해진(45)이다. 클로즈업 샷이 많은데다 좁은 공간에서의 절제된 동선이 많다 보니 연기에 많은 부담이 따랐다. 곽 감독은"연극에서 출발해 기본기가 탄탄한 베테랑들이다. 믿고 맡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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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그동안 영화에서 주로 강인한 캐릭터를 맡았다. '타짜(2006)'의 아귀, '황해(2010)'의 면정학, '도둑들(2012)'의 마카오박,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2013)'의 석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유해진은 가볍고 서민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많은 영화에서 맛깔 나는 감초연기를 해 주조연급 반열로 올랐고 그 뒤에도 '타짜'의 고광열, '전우치(2009)'의 초랭이, '이끼(2010)'의 김덕천,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철봉 등을 맡아 이런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는 지난 3월 20일 끝난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드러내 고착화될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대조되는 두 배우의 인상은 곽 감독의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어떤 부류의 인간이든 사회 부조리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두 배우는 실제로 비슷한 일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김윤석은 "손해보고 살아도 재밌게 지내려고 하는 편"이라고 했다. 유해진은 "비슷한 경험이 적잖게 있었다"면서도 "굳이 꺼내고 싶진 않다"고 했다. 영화 속 공길용, 김중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격에 곽 감독은 굳이 연기를 지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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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영화에서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두 배우의 연기에 전적으로 기대어 108분짜리 수사물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인물 중심의 전개가 이뤄지다보니 다소 산만한 측면도 있다. '소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넣은 가족의 모습 등이 극에 잘 녹아들지 않는다. 미장센도 다소 난해한 구석이 있다. 1970년대 후반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편이지만 극장 포스터로 향후 전개를 암시한 곽 감독의 의중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영화는 '오멘(1976)', '여로(1973)', '제7의 사나이(1969)'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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