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김은별 기자]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합병 반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 전량을 KCC에 매각하기로 결정하자 엘리엇이 자사주 처분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삼성물산은 공식 입장을 정리중이지만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기각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엘리엇은 보도자료를 통해 KCC에 매각한 삼성물산의 자사주 의결권 행사를 막기 위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측은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보통주 5.76%를 제일모직의 제휴사인 KCC에게 매각 제안한 것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삼성물산 관계자들의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불법적인 시도"라고 비판했다.
엘리엇은 또 "삼성물산의 자사주가 합병결의안건에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 및 KCC를 상대로 긴급히 가처분 소송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합병은 7조8500억원이 넘는 삼성물산의 순자산을 제일모직 주주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우회 이전하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기존 가치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일모직에 합병된다며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다. 앞서 엘리엇은 9일 서울중앙지법에 다음 달 17일로 예정된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 결의안이 처리되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자, 방어 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자사주 전량을 KCC에 처분해 우호지분을 20% 가까이로 늘리는 한편, 건설업계의 불확실성이 합병의 이유라는 반박 자료를 내며 여론전에도 시동을 걸었다.
자사주 처분이 완료되면 삼성 계열사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지분 13.99%와 합쳐 우호지분이 19.75%로 늘어난다. 자사주는 의결권 없는 지분이지만 합병 가결을 위해 '백기사' 역할을 하는 KCC에 매각하는 것이어서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지분 10.18%를 보유한 2대 주주인 KCC는 삼성물산 지분을 5.79%로 늘릴 것이라고 공시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발표 직후 공식 입장을 정리중이다.
현행 상법상 경영권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주권상장법인일 경우 자기주식을 대주주, 우호적인 제3자 등에게 장외에서 처분하는 행위에 대해선 명백한 제한 규정이 없다. 하지만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엘리엇의 소송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긍정적 판례로 과거 법원은 적대적 인수합병(M&A)로 인해 자사주를 우호주주에게 매각했을 당시 경영진의 행위를 주주의 이익과 직접 충돌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내린 바 있다.
부정적 판례도 있었다. 모든 주주의 재산인 회사 자산을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처분할 경우 대주주의 권리남용으로 소주주의 이익을 해할 수 있어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요지의 판례였다. 하지만 해당 판례의 경우 주식의 본질적 가치 보다 낮은 가격에, 대주주에게만 자사주를 매각해 부당이득을 제공했다는 판결이었던 만큼 이번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과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물산이 처분하는 자사주 전량은 지난 10일 종가를 기준으로 산정됐다. 지난 10일 종가는 7만5000원으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한 매수청구가격인 5만7000원을 크게 뛰어 넘는다. 합병 발표 직후 시가를 고려해도 지난 6월 5일 종가인 7만6100원 과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따라서 주식의 본질적 가치 보다 낮은 가격에 특정인에게 자사주를 매각해 부당이득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판례를 살펴볼 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결권 확보 취지로 매각하는 행위 자체가 주주의 이익과 직접 충돌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이 있었다"면서 "특정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에 장외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닌 매수청구가격과 시가를 뛰어넘는 상황인 만큼 엘리엇의 소송은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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