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가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공청회 자리를 마련했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결국 파행됐다. 개회사를 위해 공청회장을 찾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입장을 저지당했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관계자 500여명이 현장을 점거하며 결국 공청회는 예정된 시간을 30여분 넘긴 후 끝났다.
이 장관은 1시40분께 축사를 하기 위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공청회장에 들어섰지만 양대노총 조합원들에게 저지당했다. 10분간 조합원들 사이에 둘러싸인 이 장관은 결국 입장조차 하지 못한채 발걸음을 돌렸다.
고용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지침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초안에 따르면 ▲사측이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취업 규칙을 변경하기 위해 노사 협의 등 상당한 노력을 했는데도 ▲노조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논의를 거부하는 등 동의 권한을 남용할 경우 '노조 동의 없이 사측이 변경한 임금피크제 취업 규칙은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돼 있다.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이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정년 연장을 위한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기준은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측의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 ▲변경 내용의 상당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충분한 협의 노력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모두 6가지다.
정지원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국장)은 "노사가 정년연장 또는 임금체계 개편을 별개의 기득권익으로 판단해 그 어느 하나만을 반영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법 취지에 따라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에 적극 협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내 민간 기업에서 현실적으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 삭감의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예외조항을 인정하면 이를 통상임금문제처럼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채용ㆍ인사ㆍ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인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그 내용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노동계는 취업규칙 변경을 막기 위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정부가 사측의 일방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을 도와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공청회를 통해 임금피크제 등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 무력에 의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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