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인간의 본성을 자백하는 우화 한토막.
오래 전 '무지(無知)'와 '망각(忘却)'이 헐벗은 광야에서 마주쳤다.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둘은 얼굴을 붉히며 자기가 더 위대하다고 악악거렸다. 무지가 말했다. "사람들의 불행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거야. 그들은 그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폭력을 알지 못해.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모르지. 그런 무지가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그러니 내가 너보다 위대해."
망각이 맞섰다. "사람들의 불행은 나에게서 시작되는 거야. 그들은 간혹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해. 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참혹한 인간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그래서야. 인류가 불행한 것은 바로 나 때문이지."
둘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지는 "망각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라고 일갈했고, 망각은 "무지하다는 것조차 망각하는 인간들"이라고 성토했다. 그들의 입씨름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그치지 않고 이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금까지, 인간의 무지와 망각을 질책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 먹먹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대한민국 시계가 '4월16일'을 향하고 있다. 1년 전 시커먼 바닷속으로 스러져가는 아들딸들을 미처 구하지 못한, 잔인했던 그 순간을 향해. 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차마 소리 내 울지 못하고 비척거린다.
마침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정부가 말하는 '인양'이 사고 수습을 의미한다면 (인양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사고 수습을 얼마나 진솔하게 해왔느냐고.
과연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허망하게 떠나보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가족들을 위로하는데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었던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그때의 그 눈물과 그 다짐이 지금도 유효한가. 혹여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세월호를 잊지 않았던가. 그들을 향한 폭력에 침묵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한 역사는 더욱 그렇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가르침을 저 잔인한 우화는 정색하고 거든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무지와 망각 때문'이라고. 그러니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세월호 아이들이 남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위대한 유산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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