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란 질문에 이어 "정윤회씨가 정말 실세냐"는 '연관 궁금증'은 "윤창중 전 대변인은 지금 뭐하고 삽니까"와 더불어 지난 1년간 기자를 참 많이도 곤혹스럽게 했다. 그에 대한 답은 "알면 기사로 썼겠죠"와 같이 대체로 허망한 것들이었다.
버전이 바뀌어 최근에는 "박 대통령은 전(前) 정권의 어디까지 건드릴 거랍니까"라는 더욱 난해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에 대한 기자의 답은 "저도 궁금하네요"와 같은 또 역시 허망한 것들이다. 박 대통령에 우호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아슬아슬한 말꼬리 잡기가 다음 순서다.
현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행동'에 착수한 것에 많은 국민이 호기심과 기대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일련의 상황이 지난 2년간 항간에 떠돌던 '억측들'을 허물어버리는 '반전효과'로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절대 공격할 수 없는 이유에 관한 소문들 말이다.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의 약점을 제대로 잡았다거나 일종의 검은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소문들은 별 근거도 없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있다. 박 대통령이 전 정권의 수상한 행동들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집권 초반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은 이런 소문들을 더욱 신빙성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정의 칼날이 포스코에서 출발해 자원외교, MB정부 수석비서관 수사로 이어지며 전 정권의 턱밑까지 겨누자 상황은 달라졌다. 과연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인지 최대 관전포인트다. 철저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는 것은 박 대통령을 둘러싼 억측들을 한 번에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최근의 사정정국은 떨어진 지지율과 4월 재보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분석이 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런 목소리는, 박 대통령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겠으나, '검은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억측과는 차원이 다른 근본적인 질문을 의미한다. 이번 사정정국이 과거의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암의 재발까지 고려한 어떤 근본적인 작업의 일환인가라는 국민의 물음인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일은 부정부패가 어떤 토양에서 싹 트는지 되물어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부패는 권력의 과도한 집중, 불투명한 의사결정 방식, 비판세력의 부재라는 환경에서 그 몸집을 키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칙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과거를 단죄함과 동시에 현재의 권력 내부에도 같은 수준의 엄정함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박 대통령은 천명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는 인사행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날 것이다. 읍참마속의 결단이 수반될 때 국민은 더 이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관 궁금증'을 두고 억지스런 시나리오를 쓰며 분열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죽은 권력에 대한 부관참시로 마무리되는 암치료는 살아있는 권력 내부에 작은 암세포를 전이시켜 5년 뒤를 기약하게 될지 모른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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