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미국이 영국과 독일 등 주요 서방 동맹국들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를 선언한 것에 대해 재고를 요청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중국 중심의 국제 무역 질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어 향후 AIIB는 물론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등을 놓고 주요 2개국(G2)의 주도권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잭 루 미국 재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나는 이 조직(AIIB)에 참여를 최종 결정하기 이전에 과연 그 운영 방식이 적절한지를 확인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루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유럽 동맹국들의 AIIB에 참여 방침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핵심 우방 영국이 AIIB 참여를 발표한 데 이어 이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도 AIIB 참여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 외에 호주도 입장을 바꿔 AIIB에 가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 정부 역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7일 "AIIB 가입 협의가 진행 중이며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도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AIIB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 확충할 명분으로 중국이 500억달러의 자본금을 제공하며 이달 말 공식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AIIB를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물론 세계은행(WB)의 대항마로 육성, 미국과 본격적인 글로벌 금융질서 주도권 경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루 장관은 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도 "다자 금융 체제에서 새로운 선수들(new players)이 미국의 지도력에 도전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AIIB에 대해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국제기준 준수 우려 등을 구실로 동맹국들의 참여를 막아왔다. 이와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주변국을 포함하는 TPP 협상 타결을 서두르고 있는 한편 사드의 일본 및 한반도 배치를 통해 중국을 전방위 견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워 AIIB에 미국 동맹국을 포섭, 미ㆍ일 주도의 국제 금융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성과를 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IB 출범을 21세기 미ㆍ중 간 권력 이동의 신호라고까지 진단했다.
벌써부터 미 정부가 앞으로 일본과의 TPP 협상의 조속한 타결, 신흥국의 입장을 반영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등으로 반전을 모색하더라도 아시아 내 미국의 경제 주도권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양국 간의 대결은 전방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근철 기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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