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포스코건설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모기업인 포스코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난 주말 포스코건설이 압수수색을 당한 데 이어 이번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등 일부 전현직 경영진이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포스코 직원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홍역을 치른 '포스코 흑역사(黑歷史)'가 재연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16일 검찰과 재계에 따르면 검찰은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정 전 회장을 비롯해 당시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의 수사가 전현직 경영진을 겨냥한 만큼 이번 수사가 포스코건설에 국한되지 않고 포스코그룹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포스코 또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상황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곤욕을 치른 전례가 있어 이번 역시 과거의 흑역사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포스코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회장 이하 경영진이 외압 논란을 겪으면서 대거 교체됐고, 교체 때마다 검찰수사와 세무조사설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초대 박태준 회장을 시작으로 황경로·정명식·김만제·유상부·이구택·정준양 회장 등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고 박태준 회장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대선 직후인 1992년 말 회장직에서 퇴진해 일본 망명길에 올랐다. 박 회장 이후 황경로·정명식·김만제 회장 등이 취임했으나 역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김대중정부 출범 한 달 뒤인 1998년 3월 취임한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정부 출범 한 달 만인 2003년 3월 자진사퇴 형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 회장에 이어 취임한 이구택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만인 2009년 임기 1년을 남기고 중도 퇴임했다. 당시 이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았고, 하청업체들의 납품비리와 금품로비설도 난무했다.
이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은 정준양 회장도 일단 연임에 성공했으나 2013년 11월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시점에서 사퇴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10개월 만의 낙마였는데, 사퇴 2개월 전 세무 당국은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 세무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권오준 현 회장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권 회장 본인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 하더라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그룹 내 구조조정과 해외 사업들에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빌딩으로 출근하던 권 회장의 얼굴에는 어두운 빛이 역력했다. '검찰 수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며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 주말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포스코 임직원 상당수는 본사로 나와 긴급회의를 하는 등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직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언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며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수사라 향후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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