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김기종씨가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졌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가 종북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도 사실 핵심은 아니다. 종북의 구분 자체도 모호하지만 정신병자 수준의 행태를 보여온 한 사내가 북의 주장을 추종하든 말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인공노할 폭력 행위로 이 사회에 실체적 위험을 드러냈는데, 서울 한복판 공개된 장소에서 동맹국 대사를 찌르라고 부추긴 김씨의 머릿속 무엇은 그가 가진 이념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그의 무모한 극단성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종북뿐 아니라 우익이 혹은 민족주의가 때로는 권력욕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어떤 피비린내를 이 땅에 뿌려댔는지 지난 70년 동안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종북이라는 태도가 우리의 헌법 가치에 위배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면 철저히 수사해 법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패배주의에 찌든 한 386 운동권 사내의 종북성을 입증함으로써 나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에 서있는 모두에게 잠재적 테러리스트 딱지를 붙이겠다는 극단의 유혹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얻어내야 할 것은 명백하다. 폭력을 이용한 의사표현 방식은 어떤 이유 혹은 이념에서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소외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를 우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한 행동도 용납될 수 없는 극단적 폭력이며,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이 거론된다는 이유로 콘서트장 무대를 향해 인화물질을 던지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폭력들은 동맹의 얼굴이 아니라 동포의, 이웃의, 우리 모두의 얼굴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씨에 대한 수사는 그가 종북주의자임을 전제로, 어떤 조직적 배후세력이 있는가를 알아내는 데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수사결과를 예단하긴 어려우나 가느다란 연결고리라도 발견해 이번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종북주의자들의 테러'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 사정당국에게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 집권 여당의 대표는 이번 사건을 이미 "종북좌파'들'의 소행"으로 규정했다. 우리 편에 서지 않는 당신들 모두 그 범주에 속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로 들린다. 정작 미 국무부가 "범행동기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황에서 (폭력 행위) 이상의 말로 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대낮에 칼을 휘두르는 광인의 출현보다 무서운 것은 우리 모두가 모두를 믿지 못하고 숨 죽여 살아야 하는 감시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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