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기울어진 배를 바로 잡으려는 게 아니라 새 배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 1에서 주인공인 앵커 윌 맥어보이가 한 말이다. 최고의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총괄 프로듀서인 맥켄지 맥헤일을 데려온 이유를 자신의 상사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최근 사석에서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윌 맥어보이의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이들의 얼굴에서 윌 맥어보이의 마음과 같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으로 인해 기울어진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선진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관치금융을 말한다. 그동안 관치금융이 깊숙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금융권은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현실이다.
그동안 이런 불만은 꾸준히 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할 때마다 관치금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관치금융 때문이다. 특수한 권력을 가진 관리들이 민간기업인 금융사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자율성을 잃게 만들었고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금융사들은 정부나 금융당국의 눈치보기에 매우 바쁘다. 정부나 금융당국은 금융사를 독립적인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제조업과 서민들에 대해 지원하는 기관 수준으로 여겨왔다. 금융이 산업으로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규제를 통해 지속성장을 막은 셈이다.
특히 현장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관치금융이 만든 규제의 틀 속에서 국내 금융사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금융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잃었다. 특히 민간회사의 CEO 자리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특정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면서 부실한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국내 금융사가 지금이라도 경쟁력 있는 독자 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관치금융이 낳은 불필요한 규제와 보이지 않는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창의성을 떨어트리고 보신주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나마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거와 달리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울어진 배를 바로잡는 노력 보다는 새로운 배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다. 그동안 관치금융으로 인해 자생 능력을 잃은 금융사들이 새롭게 도약하려면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에 금융사 임직원들이 국내 금융산업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때문이다. 임 내정자가 새로운 '금융호(號)'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고 때문이다.
임 내정자가 NH농협금융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임 내정자는 관료 사회와 비슷한 보수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농협에서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 내정자는 평소에도 자율과 경쟁으로 금융 규제의 틀을 바꿔야 하고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가 새롭게 만들게 될 금융호에 대해 금융사 임직원들의 희망찬 시선이 벌써부터 쏠리고 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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