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통화완화 기조 이머징 국가들로 확산…'주변국 궁핍화 경쟁' 심화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전쟁이 막을 올렸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단행된 중국 인민은행의 깜짝 금리인하는 이제 신흥국들이 앞 다퉈 통화완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각국 중앙은행이 '주변국 궁핍화(beggar-thy-neighbor)'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2일 표현했다. 금리를 낮추면 통화가치 하락, 수출 경쟁력 회복으로 자국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나 이는 주변국 경제의 궁핍화로 이어지게 마련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변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각국의 금리·통화 전쟁을 초래할 게 뻔하다.
세계적인 완화 기조를 고려할 때 인민은행의 깜짝 금리인하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주요 10개국(G10) 가운데 미국·영국을 제외하고 모든 국가가 지난해 말 이후 금리인하 기조를 보이고 있다. 미·영은 금리인상에 앞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공격적인 경기부양 뒤에는 왕성하게 먹어치우던 원자재 수요 둔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호주·캐나다 같은 원자재 수출 국가들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1월 21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낮췄다. 호주도 최근 깜짝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들 국가 모두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원자재 수출국 중 브라질만 실질금리를 올리고 있다. 경제지표를 놓고 보면 브라질 역시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급락하는 통화 가치 때문이다.
브라질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14% 상승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4.5%를 크게 웃돌았다. 헤알화 가치는 10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브라질을 제외한 대다수 신흥국은 인플레이션보다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이나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대해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으레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했던 나라들도 저유가가 물가상승을 제한하자 금리인하의 숨통이 트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인도네시아·터키다.
인도 중앙은행(RBI)은 지난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라구람 라잔이 RBI 총재 취임 이후 1년 8개월만에 단행한 첫 금리인하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7.5%로 0.25%포인트 내렸다. 인도네시아가 금리를 낮춘 것은 3년만에 처음이다. 터키 중앙은행도 2개월 연속 금리를 인하했다. 태국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금리 인하론이 고개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이후 두드러진 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의 통화완화 경쟁이 올해 들어 신흥국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나마 달러 강세 속에서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신흥국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엔저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위안화까지 약세로 돌아서면 한국 같은 주변국 기업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외신들은 4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는 한국은행도 금리인하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이코노미스트들에게 물어본 결과 한은의 경우 3~6월에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일본 다이치 생명의 니시하마 토루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의 잇단 금리인하는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서 "하지만 과도한 유동성 공급은 금융시장이 미미한 충격에도 크게 타격을 입는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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