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증세 없는 복지' 갖고 말이 많습니다. 같은 시간에 대통령님을 만나고 나온 사람들 말도 다릅니다. 누구는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고 누구는 '그런 말 자체가 없었다' 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증세 없는 복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증세는 이뤄졌습니다. 금연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습니다. 공평한 과세를 위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꿨습니다.
어찌 됐던 국민들은 증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건강보험료, 공무원연금 등 줄줄이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한다고 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한다고 하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머니 사정이 예전 같지 않겠구나'하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은 취임 초기부터 경제활성화에 '올인'하셨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제쳐뒀습니다. 복지 논쟁도 방점은 경제활성화였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당연히 세금을 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럼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근데 이게 어디 쉬워야 말이죠.
지난 여름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했습니다. 서둘러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마치 준비된 경제부총리 같았습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초이노믹스'로까지 칭했습니다. 고용률 70% 달성은 요원합니다. 담뱃값 상승을 빼면 물가상승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부동산 경기는 요지부동입니다. 국회를 탓하기엔 그 골이 너무 깊습니다.
경제활성화 여건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대기업도 한껏 움츠러들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까지 81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업소득환류세 때문인가 봅니다. 삼성도 몇몇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외환위기라는 드라마틱한 상황도 아닙니다. 대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은 낯선 느낌입니다. 등 떠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8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습니다. 대통령님도 방문하셨던 곳입니다. 반도체는 운송비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한국에서 만들어 중국으로 보내도 됩니다. 비행기에 실으면 반나절이면 갑니다.
왜 삼성전자는 허허벌판에 가까운 시안에 투자했을까요. 충남 탕정은 그만한 땅이 없을까요. 기업은 돈을 쫓습니다. 규제 몇 개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싶습니다.
가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세금은 오르고 있습니다. 치솟는 전셋값은 금연을 해도 감당이 안 됩니다. 최근 아파트 거래가 일부 활발해졌습니다. 치솟는 전셋값에 대한 반발 심리입니다. 정책 효과는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집을 사려고 하겠습니까. 이게 정부가 기대한 부동산 경기활성화는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론이 잘 통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주택 사다리'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다가 서울시 약수동으로 이사하고, 마침내 동호대교를 건너 대치동, 도곡동으로 이사하는 게 '주택 사다리'입니다. 이론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사에 따른 비용ㆍ주변 지역 물가, 교육비 등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 확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불투명한 미래가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늘어났습니다. 미래 소득을 당겨 지금 아파트를 사라는 말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른다면 투자쯤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아파트를 살 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근데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면 어쩌죠. 투자 회수는커녕 미래소비까지 위축됩니다. 자식 교육과 노후 대책에 대한 고민은 덤입니다.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했으면 합니다. 선진국처럼 낮은 성장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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