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합니다."
에볼라 대응 해외긴급구호대 1진 소속의료대원들이 귀환 후 그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1진은 군의료진 5명(의사 2명·간호사 3명)과 민간 의료진 5명(의사 2명·간호사 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이탈리아 비정부기구(NGO) '이머전시'가 운영하는 시에라리온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ETC)에서 지난해 12월27일부터 30여일간 에볼라 환자를 돌봤다. 영국 사전 교육을 마친 이들은 지난해 12월21일 시에라리온에 입국해 수도 프리타운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에서 의료활동을 한 뒤 올해 1월26일 귀국했다. 이후 3주간의 격리관찰을 거쳐 이달 15일 귀가했다.
22일 인천공항 공사에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마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의사와 간호사 7명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뿌듯함이 배어 나왔다.
육군 간호장교인 오지숙 대위(29)는 "어느날 인터넷뉴스에서 에볼라에 감염됐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봤다"며 "비록 사망률이 50%에 이른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 따뜻하게 함께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고 털어놨다. 육군 의무장교인 오대근 중령(39)은 "영상의학과라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아이덴티티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며 촬영실에서 나와 환자치료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의 만류도 있었다. 구호대 지원을 알고 서울로 찾아온 이태헌 대위의 아버지는 '정말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차마 내 자식은 여기 못 보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 대위는 "옆에 있던 어머니도, 저도 울었다"며 "결국 제 뜻을 꺾지 못하셨다"고 전했다.
현지 의료활동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의료진은 어려운 근무 여건 속에서 에볼라의 공포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도 싸워야 했다. 동료 대원 1명이 주삿바늘 접촉 사고로 활동을 중단하고 독일로 후송되는 긴박한 상황도 경험했다. 이들의 활동 초반 가더리치 ETC에서는 국제 의료진 25~26명이 환자 33~34명을 돌봤다.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에 견줘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대위는 투병 끝에 숨진 두 살배기 환자 '알리마'가 기억에 남는다며 "울고 있는 아기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려 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대위는 치료 중 잠시 의식이 돌아온 알리마에게 젖병을 물려 준 순간을 떠올리며 "아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구호대 파견 전 정책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던 오 중령은 북한과의 생화학전에 대비해 군의 이동식 병원 시스템을 더 활용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대원 1명이 독일로 후송되는 과정을 보며 WHO 중심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이 참 잘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저희도 군과 민간이 공조해 매뉴얼을 계속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돼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에 참여한 KDRT 의료대 2진 9명이 활동을 마치고 23일오후 귀국한다. 의사 4명과 간호사 5명으로 구성된 에볼라 긴급구호대 2진은 지난달 26일부터 약 한 달간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인근 가더리치 지역의 ETC에서 에볼라 환자의 증상 치료 및 혈액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 약물 처방 등의 활동을 했다. 이들은 귀국 후 에볼라 바이러스의 최대 잠복 기간인 3주 동안 별도로 마련된 국내 시설에 격리돼 관찰을 받은 뒤 일상생활에 복귀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이상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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