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태환 의사' 업무상과실치상 혐의 기소…국내 판례 없고, 독일 동독 시절 사건 판례 있어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주사약병의 주의사항을 보면 약물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로 나온다.”
검찰은 6일 수영선수 박태환씨 ‘금지약물’ 주사를 둘러싼 수사결과를 설명하면서 의미심장한 내용을 전했다. 주사약병의 주의사항만 꼼꼼히 봤어도 한국의 간판 수영선수인 박씨의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이두봉)는 박씨에게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을 처방한 혐의를 받았던 T의원 원장 김모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6일 불구속 기소했다.
‘박태환 주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검찰은 형법 266조(과실치상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법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운동선수에게 금지약물이 함유된 주사를 처방한 의사를 과실치상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국내 판례가 없다는 게 문제다. 검찰은 죄를 묻겠다고 나섰지만 실제로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도 그 부분이 고민이었다. ‘박태환 의사’가 주사약병만 꼼꼼히 봤어도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주의를 다하지 않은 행위와 형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지난해 7월29일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함유된 ‘네비도(Nebido)’의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박씨에게 주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박씨는 물론 김 원장도 네비도에 금지약물이 함유돼 있었는지를 몰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적어도 검찰 수사에서는 고의에 의한 금지약물 투약혐의는 발견되지 않은 셈이다. 박씨 측에서는 금지약물이 포함된 약물은 처방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수차례 당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도핑 문제 때문에 감기약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을 정도로 금지약물 복용 가능성에 대비했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네비도 주사를 맞기 전에도 금지약물이 포함됐는지에 대해 확인했고, 의사가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주사를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김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다. 업무상 과실치상죄는 ‘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박씨 사례를 상해로 볼 수 있는지가 논란의 초점이다.
검찰은 “피해자로 하여금 주사 후 일주일 동안 보행에 지장을 주는 근육통과 테스트론 양 변화에 따라 호르몬 변동 등이 있었다”면서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의 이러한 설명은 궁색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주사를 맞게 되면 일정 기간 근육통을 느끼게 되고, 호르몬 관련 주사를 맞으면 호르몬 변동이 있는 게 당연한데 이를 ‘업무상 과실치상’의 사유로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독일 사례를 예로 들었다.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동독 스포츠클럽에서 여자 선수들에게 비타민제라고 속이고 남성호르몬 알약을 투약한 게 드러나면서 ‘업무상 과실치상죄’가 인정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독일 사례는 의사가 남성호르몬이 든 약임을 알면서 비타민이라고 속여 투약하게 한 행위라는 점에서 박씨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볼 일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민적인 관심의 정도에 비춰 조속히 설명을 드려야 한다는 판단 하에 신속히 사건 수사를 했다. 피해 정도가 상당하고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상황인데 (김 원장 측이) 법리적인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에 판단을 받아볼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해서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