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
1973년10월6일 토요일. 총성이 들렸다. 금식하며 하느님께 죄를 회개하던 유대인들은 이날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의 날벼락 같은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예기치 못한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등 주요 거점을 빼앗겼다. 전쟁발발 10일째 되던 날인 10월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원유 가격을 전격 17% 인상했다. 다음날인 17일에는 원유생산을 매월 5%씩 감산한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1차 오일쇼크가 이렇게 시작됐다. 석유값은 순식간에 연초 대비 4배 이상 치솟았다. 석유가 정치적 무기로 사용, 그 위력을 발휘했다.
1차 오일쇼크에서 벗어날 무렵인 1979년 이란이 석유의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당시 전 세계 석유 공급의 15%를 담당하던 이란이 석유수출을 금지하면서 석유값은 다시 고공행진했다. 전 세계 경제가 2차 오일쇼크로 인해 또다시 휘청거렸다.
중동 산유국은 1∼2차 오일쇼크를 통해 석유가격의 결정권을 장악했다. 또 에너지 패권을 쥔 중동 산유국을 바라보는 서방세계의 시각도 180도 바뀌었다. 세계적 관심사가 '종교와 이념'에서 '자원'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됐다.
국제 유가가 심상치 않다. 오일쇼크 때와 달리 곤두박질치고 있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2차 오일쇼크 당시 가격대가 될 정도다.
이번 유가 하락의 뒷끝이 개운치 않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 가격이 아니라 산유국간 에너지 패권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제 유가하락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깔려 있어 더욱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셰일가스 개발로 비롯된 미국과 중동 산유국간 힘겨루기다. 유가하락으로 러시아와 이란 등 일부 산유국이 치명타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등 일부 국가 견제용으로도 해석된다. 덤으로 유가하락은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50년 가까이 석유 자본을 축적한 부유한 중동 산유국과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국가들은 이번 유가하락에 따른 충격이 덜하다.
석유 100% 수입국인 한국은 유가하락의 수혜국이다. 가계 살림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유가하락에 따른 수혜에 취해서는 안된다.
오일 고차 방정식이 풀리면 석유값은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유가로 한국경제가 시름할 수도 있다.
친환경 자동차 등 그린 에너지 개발의 끈을 재차 삼차 다시 한번 동여매야 하는 이유다. 당장 기름값이 떨어지면 그동안 관심을 받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 등이 소비자의 구매 리스트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다. 실제 기름값이 리터당 1200원대까지 떨어지자 지난달 현대ㆍ기아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의 판매가 전월대비 20% 이상 급감했다.
친환경 자동차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완성차 업체들은 연구개발의 동력을 잃게 된다. 기름값과 상관없이 미래 먹거리이자 한국경제의 기반이 될 친환경 자동차와 친환경 에너지의 개발과 지원,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조영신 기자 as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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